어떻게 잘살고 잘죽을까? (계14:13)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어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당당한 권력으로도, 억만금의 돈으로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권력자도, 부자도, 정치가도 예술가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한 때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병철 회장은 죽기 전에 의료진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1년만 살게 해주시오.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저는 돈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돈을 돈답게 써보지 못하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제게 1년 만 더 주어진다면 이제는 멋지게 쓰다가 죽고 싶습니다.” 결국 그 분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어리석은 부자처럼 돌아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잘살다가 잘죽을 수만 있다면 복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잘살다가 잘죽은 자들에게 약속된 신령한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잘사는 것은 주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잘죽는 것은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다 주앞에 서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물질과 시간과 젊음과 재능을 다 소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를 사는 그래서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살았던 예수꾼이요 예수쟁이였습니다. 잘사는 삶입니다.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남은 때를 주의 영광을 위하여 마지막 코스까지 달려갈길을 다 달리고 그의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였습니다.
이처럼 주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로 영원한 안식의 축복입니다.
본문은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하였습니다(계 14:13). 여기 ‘쉰다’는 말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 안식은 ‘수고가 끝났음’에 대한 사실상 보상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것은 마치 온갖 싸움의 격전지에서 무공을 세운 병사들이 즐거운 휴가를 얻음과 같습니다. 저들의 안식은 사실상 이 세상의 인생 고를 끝낸 안식이었습니다. 주께로부터 받은 모든 십자가적 사명의 삶을 성공리에 마친 후에 얻은 안식이었습니다. 저들의 안식은 천국에 영존(永存)하시는 예수님과 직접 함께 하는 안식입니다.
다익(Dr. K. Dijk)은 저들의 안식에 대하여,
① 죄악의 고통에서 완전히 떠난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② 마귀와의 투쟁을 마친 후의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모든 고통거리와 적대행위를 당하지 않는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④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방면에서 애쓰는 괴로움에서 떠나는 평안이라고 하였습니다. ⑤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한 모든 사업의 고통에서 떠난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여기 세상이라고 하는 탄식의 마당에서 이제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 곧 영원한 집을 덧입는 즐거움입니다(고후 5:1-2).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세상에 있으면서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3-4).
이렇게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한 말은 저희의 행한 일에 따라오는 안식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온갖 인생 고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수고해서 얻을 때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가장 힘든 일을 하고 난 후의 안식만큼 달콤한 때가 없습니다. 힘써서 땀흘리고 일한 후에 맞는 수면, 그것은 얼마나 달콤합니까? 죽음의 풍랑을 겪은 후의 적막! 격전을 치른 후의 평화! 수고로운 삶 후에 맞는 죽음! 고통의 슬픔 후에 맞는 기쁨! 그 얼마나 맛좋고 달콤한 안식인가!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둘째로 보상의 복입니다.
본문은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4:13). 이 말은 저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상급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수고스럽게 행한 업적이 금세에서도 따라오고, 내세에서도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상급(축복)은 예수를 믿은 후 성화과정에서 일어나는 선행의 열매로 하나님과 사람의 협동적 산물입니다.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이것은 금세와 내세에서 따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
에베소교회 약속- 첫사랑을 회복하여 그 사랑을 능력안에서 그사랑안에 거하면 하나님도 그안에 거하십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신 다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약속-궁핍과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버가머 교회 - 예수 그리그스도를 날선 검으로 말씀의 검으로 성령의 검으로 취하여 전투적인 교회생활에서 승리하면 감추인 만나를 먹게 합니다. 흰돌에 이름을 세겨 줍니다.
이 누림의 완성이 새 예루살렘성인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모든 믿는 이들이 지상의 모든
조성을 끝내면 새 예루살렘으로 조성되는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의 거처로 성도들의 단일 구성체로 지어져 가는 것이 천년왕국입니다. 우리 주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로 주와 어린양 혼인 예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생을 아프리카에서 고난을 당하며 선교한 선교사 부부가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데 뉴욕항구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이고 큰 악기들이 팡파레를 울리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노 부부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 배를 같이 타고온 린도 버거라는 비행사를 위해서 그렇게 야단들이었습니다. 린도 버거는 처음으로 단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불란서에 도착한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뉴욕시민이 다 출동을 하고 나팔을 불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내려 보니까 자기를 맞으러 온 아무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3등 여관에 들어가서 짐을 풀어 놓고 일생에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친 그 몸을 가지고서 침대에 걸터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 린도 버거라는 젊은 사람은 비행기 운전해서 대서양 건너갔다고 저렇게 팡파레를 울리고 환영을 하는데 우리는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고향땅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마중하는 사람이 없고 이렇게 쓸쓸할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우니까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 린도 버거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희들은 아직 고향에 안돌아 오지 않았느냐? 너희는 아직 객지에 있지 않느냐? 이땅에 고향이 어디 있느냐? 너희 영원한 고향은 천국 아니냐? 너희도 고향에 돌아오는 그 날에는 천군, 천사들이 와서 나팔을 불고 팡파레를 울리고 하나님의 환영의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참고 견뎌라!’ 우리도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서 이미 환영 아치를 세워 놓고 천사들을 동원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키십시오. 의의 면류관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 한상윤 목사님은 천국입성 축하예배를 그동안 함께 교회생활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달려갈길을 다 달리시고 믿음을 지키신 후 새하늘 새 땅에 서 누릴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하여 주님앞에 도착하셨습니다. 남은 유족들과 성도들은 이제 고인께서 가신 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체울것입니다. 그런후 모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고 감추인 만나를 먹고 새이름이 새겨진 흰돌을 받아 먼저 달리신 믿음의 선진들의 박수와 응원을 받으며 믿음의 경주를 오나주할 것입니다. 우리 그때까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aakx은 사명 죽도록 충성을 다할 것을 주님앞에 다짐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예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어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당당한 권력으로도, 억만금의 돈으로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권력자도, 부자도, 정치가도 예술가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한 때 삼성그룹의 총수였던 이병철 회장은 죽기 전에 의료진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1년만 살게 해주시오. 1년만 더 살 수 있다면 그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저는 돈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돈을 돈답게 써보지 못하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제게 1년 만 더 주어진다면 이제는 멋지게 쓰다가 죽고 싶습니다.” 결국 그 분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어리석은 부자처럼 돌아셨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어떻게 사느냐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잘살다가 잘죽을 수만 있다면 복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잘살다가 잘죽은 자들에게 약속된 신령한 축복의 말씀이 있습니다.
잘사는 것은 주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잘죽는 것은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다 주앞에 서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물질과 시간과 젊음과 재능을 다 소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를 사는 그래서 예수의 흔적을 가지고 살았던 예수꾼이요 예수쟁이였습니다. 잘사는 삶입니다.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남은 때를 주의 영광을 위하여 마지막 코스까지 달려갈길을 다 달리고 그의 믿음을 지켰던 순교자였습니다.
이처럼 주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로 영원한 안식의 축복입니다.
본문은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하였습니다(계 14:13). 여기 ‘쉰다’는 말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 안식은 ‘수고가 끝났음’에 대한 사실상 보상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것은 마치 온갖 싸움의 격전지에서 무공을 세운 병사들이 즐거운 휴가를 얻음과 같습니다. 저들의 안식은 사실상 이 세상의 인생 고를 끝낸 안식이었습니다. 주께로부터 받은 모든 십자가적 사명의 삶을 성공리에 마친 후에 얻은 안식이었습니다. 저들의 안식은 천국에 영존(永存)하시는 예수님과 직접 함께 하는 안식입니다.
다익(Dr. K. Dijk)은 저들의 안식에 대하여,
① 죄악의 고통에서 완전히 떠난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② 마귀와의 투쟁을 마친 후의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모든 고통거리와 적대행위를 당하지 않는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④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방면에서 애쓰는 괴로움에서 떠나는 평안이라고 하였습니다. ⑤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한 모든 사업의 고통에서 떠난 안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여기 세상이라고 하는 탄식의 마당에서 이제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 곧 영원한 집을 덧입는 즐거움입니다(고후 5:1-2).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여기 세상에 있으면서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3-4).
이렇게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한 말은 저희의 행한 일에 따라오는 안식의 축복을 의미합니다. 온갖 인생 고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수고해서 얻을 때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가장 힘든 일을 하고 난 후의 안식만큼 달콤한 때가 없습니다. 힘써서 땀흘리고 일한 후에 맞는 수면, 그것은 얼마나 달콤합니까? 죽음의 풍랑을 겪은 후의 적막! 격전을 치른 후의 평화! 수고로운 삶 후에 맞는 죽음! 고통의 슬픔 후에 맞는 기쁨! 그 얼마나 맛좋고 달콤한 안식인가!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둘째로 보상의 복입니다.
본문은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4:13). 이 말은 저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상급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수고스럽게 행한 업적이 금세에서도 따라오고, 내세에서도 따라온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이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상급(축복)은 예수를 믿은 후 성화과정에서 일어나는 선행의 열매로 하나님과 사람의 협동적 산물입니다.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이것은 금세와 내세에서 따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
에베소교회 약속- 첫사랑을 회복하여 그 사랑을 능력안에서 그사랑안에 거하면 하나님도 그안에 거하십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에 감전되어 살면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신 다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약속-궁핍과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고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하십니다.
버가머 교회 - 예수 그리그스도를 날선 검으로 말씀의 검으로 성령의 검으로 취하여 전투적인 교회생활에서 승리하면 감추인 만나를 먹게 합니다. 흰돌에 이름을 세겨 줍니다.
이 누림의 완성이 새 예루살렘성인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모든 믿는 이들이 지상의 모든
조성을 끝내면 새 예루살렘으로 조성되는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님의 거처로 성도들의 단일 구성체로 지어져 가는 것이 천년왕국입니다. 우리 주님은 신랑이요 우리는 신부로 주와 어린양 혼인 예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생을 아프리카에서 고난을 당하며 선교한 선교사 부부가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데 뉴욕항구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이고 큰 악기들이 팡파레를 울리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노 부부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고 그 배를 같이 타고온 린도 버거라는 비행사를 위해서 그렇게 야단들이었습니다. 린도 버거는 처음으로 단발 비행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서 불란서에 도착한 사람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뉴욕시민이 다 출동을 하고 나팔을 불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내려 보니까 자기를 맞으러 온 아무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3등 여관에 들어가서 짐을 풀어 놓고 일생에 선교 사역을 하다가 지친 그 몸을 가지고서 침대에 걸터 엎드려서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 린도 버거라는 젊은 사람은 비행기 운전해서 대서양 건너갔다고 저렇게 팡파레를 울리고 환영을 하는데 우리는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고향땅에 돌아왔는데 아무도 마중하는 사람이 없고 이렇게 쓸쓸할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우니까 성령이 말씀했습니다. ‘ 린도 버거는 고향에 돌아왔지만 너희들은 아직 고향에 안돌아 오지 않았느냐? 너희는 아직 객지에 있지 않느냐? 이땅에 고향이 어디 있느냐? 너희 영원한 고향은 천국 아니냐? 너희도 고향에 돌아오는 그 날에는 천군, 천사들이 와서 나팔을 불고 팡파레를 울리고 하나님의 환영의 퍼레이드가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참고 견뎌라!’ 우리도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우리를 환영하기 위해서 이미 환영 아치를 세워 놓고 천사들을 동원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고 믿음을 지키십시오. 의의 면류관이 여러분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고 한상윤 목사님은 천국입성 축하예배를 그동안 함께 교회생활하며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달려갈길을 다 달리시고 믿음을 지키신 후 새하늘 새 땅에 서 누릴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하여 주님앞에 도착하셨습니다. 남은 유족들과 성도들은 이제 고인께서 가신 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체울것입니다. 그런후 모두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쓰고 감추인 만나를 먹고 새이름이 새겨진 흰돌을 받아 먼저 달리신 믿음의 선진들의 박수와 응원을 받으며 믿음의 경주를 오나주할 것입니다. 우리 그때까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aakx은 사명 죽도록 충성을 다할 것을 주님앞에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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