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6기 시작 이전
[개괄]
오랜 침묵의 시간을 깨고 운영자 유가를 중심으로 하는 삼모전 16기가 시작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에 대해 기존의 삼모전 회원들과 홍보를 통한 신규 회원들이 각 군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본래 다른 지역에 군영을 창설할 목적이 있었으나 유가와 상의 후 조조군주가 된 하후돈은 평소 친분이 있는 인물부터 포섭에 들어갔다. 제갈덕현, 최염, 강태공 등이 이에 응했으나 많은 장수들은 양양과 강동에 분산되었다. 원소군영과 한중, 성도군영은 신입회원이거나 비교적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중되었다.
즉 오랫동안 삼모전에서 친분을 쌓았던 인물들이 조조, 강동, 양양에 몰린 반면 신규회원을 중심으로 원소, 한중, 성도군영에 포진함으로써 차후 친목 등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갈등의 씨앗을 남겨버렸다. 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문제는 점차 해소되는 듯하였으나 몇주간 계속되는 사건으로 인해 한때 기가 종결될 분위기까지 몰리기도 하였다.
한편 조조군영은 애초에 강동군영과의 동맹 회담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가장 현실적이고 위협적인 주적은 원소군영이었으며 원소군영에 대한 기 시작 이전의 외교 회담에 어려움이 많았던 관계로 자연스럽게 이보다 편한 강동군영이 포섭의 대상이었다. 강동군주 순유공달, 그리고 군사 공손찬은 오랫동안 하후돈과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상호 배신의 위험성은 매우 적은 편이었다. 다만 아직 양군은 동맹을 확정짓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조조군은 동맹에 대한 확답을 원했지만 강동군에서는 아직 확실한 답변을 주지는 않았다. 이와 별개로 성도군주 제갈상, 한중군주 한온, 양양군 군사 육항과의 외교회담도 시작되었고 초기 친밀 외교를 할 것을 합의하였다.
[배후 세력]
주적을 원소군영으로 둔 이상 배후의 적들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강동군영과의 연합이 절실했으므로 외교적 주안점은 강동군영과의 합동 군사행동이었다. 양양군영이 나타나면서 강동군영은 새로운 위협을 느꼈고 이는 조조-강동 동맹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양양군영은 조조군영과의 외교 회담에서 완에 대한 점령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부 일대에 대해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함으로써 강동-양양간 갈등은 심화되었다. 원래 육항과 순유공달의 성격 차이나 가치관의 차이도 컸으므로 서로 같이 뜻을 도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양양군영에 대해서는 중립이라는 미명 하에(사실상 하북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는 이상, 형주-강동 전역에 대해 조조군은 손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강동군영이 견제하기로 하였다.
직접적인 국경을 맞닿지 않은 성도군영은 차치하고, 한중군영은 장안을 두고 조조군영과 갈등을 빚을 수 있었다. 조조군영은 한중군영에게 장안 점령권을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대신 서량 태수 임명에 대해 황실에 강력히 건의할 것을 약속하였고, 경제적 지원도 약속하였다(그러나 16기 룰상 경제적 지원이 불가능해 짐은 후에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한편 성도군영과 한중군영에 상호 견제를 획책함으로써 장안에 대한 의지를 꺾고, 나아가 하북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양군이 대립하는 방향의 외교노선을 펼치게 되었다.
[하북 문제]
조조군 초기 회의는 모두 하북 문제에 집중되었다. 한중 군영과의 외교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하북이었다. 하북 전역을 종겨해야만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을 꾀할 수 있었던 만큼 하후돈 이하 모든 장수들은 조기 결전에 뜻을 모았다. 초기에 허창에서 1만의 병력을 모아서 업을 공격한다는 1차 계획안이 성립되었고 이에 대한 내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조조군보다 원소군이 지리상 훨씬 유리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다. 설사 조조-강동 연합이 성립한다 하더라도 양양과의 화친한다면 강동군은 남부 전선에 모든 병력과 물자를 집중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결국 조조-원소간 결전이라면 위치상으로 원소군이 훨씬 유리했다. 비록 조조군이 배후의 위협을 제거했다고는 해도 언제 배신당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조군영이 조기결전을 결정한 데에는 이러한 상황적 고려가 컸다. 업만 공략한다면 조조군이 승리할 공산이 컸다. 그러나 장수수를 보나 위치상으로 보나 업 공략이 실패할 경우 조조군이 멸망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결국 이를 해결할 돌파구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