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토요일 낮. 불교여성개발원 교육관이 분주하다. 8월22일 대만에서 열리는 ‘Dharma translation workshop’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 샤카디타 소속회원들의 목소리가 높다.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워크숍 준비로 분주한 여성들 사이에 야구모자를 쓴 젊은 남성이 눈에 확 들어온다. 선재를 찾아다니던 내가 그를 놓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여덟 번째 선재를 만났다. 그를 노량진역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제 이름은 김승혁이고, 1989년생, 서울대에서 산림환경학과 사회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08학번입니다. 아직 졸업하진 않았고 군 입대를 한 달 앞두고 있어요.”
“한 달 뒤에 군대 가려면 마음이 좀 싱숭생숭할 텐데 대만에 다녀올 여유가 있네요?”
문제없단다. 사흘 동안 워크숍에 참석한 뒤 자신은 일행과 떨어져 열흘 정도 대만을 여행한 뒤에 돌아올 생각이란다.
“대만을 참 좋아해요. 교환학생으로 가 있기도 했고, 지금까지 모두 여덟 번 정도 다녀왔어요. 아, 자기소개마저 할까요? 저는 총불교학생회(서울대불교학생회)에서 활동했고, 회장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네요?”
“예. 내적으로 외적으로 성숙하고 싶었어요. 정신적인 성숙에 불교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입학하자마자 불교학생회에 가입했어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회장도 했는데, 회장을 맡고서 불교에 대해 공부를 조금씩 해왔어요. 혼자서. 시간 날 때마다 불교관련 책을 찾아 읽고, 선원도 찾아다녔지요.”
“성인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불교를 선택하고 받아들였다는 말이네요.”
“어쩌면 저 혼자만의 인연이 아닐 수도 있어요. 아버지도 총불교학생회 회원이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무교(無敎), 어머니는 크리스챤이셨어요. 애초 집안에서 종교생활은 하지 않았지만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가족에게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엄마가 가족을 설득해서 성당에 다 함께 다닌 적이 있지요. 세례도 받고 했는데, 하지만 내가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저항감이 느껴졌어요. 종교의식도 의미가 없고 앉았다 일어섰다하는 것, 영성체… 이런 것들이 귀찮다고까지 생각했어요, 그때는.”
김승혁은 솔직하게 말한다.
“사실 누군가 제게 종교가 뭐냐고 묻는다면, 전 대답이 두 가지입니다. 무교(無敎), 또는 불교지요. 만일 종교의 정의를 절대자와의 만남이나 구세주, 창조주의 구원에 두고, 불교도 그런 종교라면 저는 무교입니다. 부처님께 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배우고 거기서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불교’라면 제 종교는 불교입니다.”
“이번에 대만에 가게 되었는데 발표도 하게 되지요?
“예. ‘한국대학생들의 불교활동에 대해서’라는 주제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대학생 불교단체가 많이 축소된 이유에 대해서 나름대로 분석하고, 나아가 대학생들과 가까이에서 접촉할 수 있는 스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펼칠 생각입니다.”
“불교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젊은 친구들이 끊이지 않는데 불교계가 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지요? 실제로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안타까운 점들도 많았을 텐데요.”
“7, 80년대 동아리 선배들은 당시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많이 배웠다고 해요. 그리고 선지식들도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 끈이 없어요. 전국에 150여개 불교 동아리들이 있는데 열 곳 중에 세 곳 정도가 지도법사를 모시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법회를 하지 못하는 동아리도 제법 됩니다. 학생들이 스님을 모시기가 너무 힘들어요. 스님들도 너무나 바쁘시고요.”
동아리 지도법사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애를 태우며 뛰어다닌 적이 있던지 김승혁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다.
“스님들이 바쁘셔서 불교학생회를 지도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이름난 스님들을 찾아뵈어도 그분들이 너무 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주셔서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오해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고압적인 자세를 느낀 적이 종종 있었어요. 종교계 안에서 높은 스님이라고 하여 밑에 있는 사람들이 공손하고 극진히 모시고는 있겠지만 학생들은 너무나 낮은, 제일 낮은 위치에 있으니 그런 ‘높은 스님들’과 거리감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집니다. 스님 좀 친견하려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고….”
불교동아리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스님을 모셔 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 다가가서 청하기에 스님은 너무나 높고 멀리 계셨더라는 그의 말이다. 권위적인 것에 저항감을 느낀다는 그는 이런 거부감이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정이라고도 말한다.
“어릴 때부터 그런 게 싫었어요. 사실 종교인들이 권위를 가지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싫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데, 절에서도 기독교 교회가 하는 것과 비슷한 그런 걸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큰 절에는 잘 가게 되지 않아요. 차라리 조그만 절에 아는 스님이 있으면 찾아뵙고 이야기 나누는 걸 더 좋아해요.”
“나도 거의 같은 생각을 해요. 하지만 또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스님들이 그렇게 권위적이고 위압적으로 나오는 건 어쩌면 사람들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교만을 꺾기 위해서라고….”
이렇게 에둘러 변명하는 내 모습이 영 어색하다. 하지만 스님들이 너무 권위적이라는 그의 주장에 괜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궁색한 말을 늘여놓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내게 돌직구를 던졌다.
“왜 꼭 스님들이 사람들의 교만을 꺾어야 하나요? 스님은 구도하는 분이고, 그걸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람일 뿐 아닌가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왜 꼭 그리 ‘높임’을 받아야 하지요? 깨달음의 세계에는 높고 낮음도 없다고 하던데, 왜 스님은 높고 다른 사람은 낮게 자리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지적은 매섭다.
“그리고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모든 스님들이 다 존경받을 자격을 갖추었느냐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요? 어떤 스님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하지만 저는 주변에서 저를 머리 숙이게 만드는 스님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옷을 달리 입었다고 권위를 인정받고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 난 그런 것이 거북합니다.”
“경전에 스님이 탁발 나가면 신자들이 정성스레 보시하고, 스님 덕분에 그런 공덕을 재가자가 지을 수 있다는 내용도 자주 등장하잖아요. 그건 어떻게 생각해요?”
“문화적인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모든 스님들이 한결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고 수행에만 나선다면 존경받을 만하지요. 하지만 요즘 불교계가 정말로 그런가요? 설령 수행자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시는 스님이라 해도 한국불교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바뀐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예전에는 텔레비전이 중앙에서 쏘아대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서 보고 즐겼다면 이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수평적인 연대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들이 학생들과 수평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좀 더 가깝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불교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좋은 지적이네요. 그렇다면 이제 젊은 불자들이 불교계에 뭔가 요구해야 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불교에 그리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굳이 불교를 살리자는 운동에 동참할 젊은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들도 나름대로 취업이니 뭐니 하며 바쁘지요. 불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다른 종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리로 가면 되고, 또 뭐 굳이 종교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종교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이런 위기감은 젊은 세대에게는 없어요. 이걸 위기라고 인식하는 윗세대의 불자들이 나서야겠지요.”
만약 지금 본인에게 젊은 층을 위해 불교계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은가 묻자 김승혁 선재는 생각에 잠기더니 ‘비판하기는 쉽지만 막상 어떤 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렵네요’라며 솔직하게 대답한다.
“총불회 회장을 지내면서 간절히 원했던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요?”
“불교학생회 동아리가 스님을 구하기 쉬운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당시 동아리에서 지도법사 자리가 비자 몇 분의 스님이 오시기는 했지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뭔가 석연치 않았어요. 자신들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설득력이 없었어요. 그때 비구니 스님의 추천으로 다행히도 스님 한 분을 모시기는 했지만 당시를 돌아보면 어떤 분이 올바르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는 분이지 판가름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구요. 한 번 모시면 몇 년을 하시게 될 텐데 말이지요. 좋은 스님, 검증된 좋은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셔올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불교계가 좋은 스님들을 리스트업해서 불교학생회가 요청할 경우 파견하는 그런 시스템, 게다가 스님의 지도가 불만족스러울 때 학생들이 다른 분으로 모셔갈 수도 있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하지만 스님에게 불만사항이 있어도 너무 권위적이기 때문에 의사표현을 할 수가 없어요. 학생들은 불만이 있어도 속으로만 삼키고, 그렇게 불만이 쌓이다보면 결국 불교 자체에 관심도 떨어지고 동아리 활동도 흐지부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한번 나름대로 자격조건(?) 뭐 그런 걸 제시해볼까요? 젊은 층을 이끌만한 스님은 어떤 분이어야 할까요?”
김승혁이 난처한 듯 웃는다. 자신이 어떻게 그런 걸 말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채근하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렇게 운을 뗀다.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린다면, 첫째로는 열린 마음입니다. 학생들과 평등하게 소통하려는 자세가 중요해요. 그리고 둘째로는 스님 자신이 얼마나 공부가 되어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의 고민에 현실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세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군대를 마친 뒤의 계획을 묻자 그는 외국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외교공무원 같은 대외적 관련 공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젊은 친구들에게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일단 대답은 Yes입니다. 불교는 어떤 역할을 분명히 합니다.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첫째로는, 어느 종교나 비슷하게 제공해주는 것이겠지만, 종교적인 의식에서 갖게 되는 마음의 평화, 이런 것이 이 시대 불교의 역할이겠지요. 꾸준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바쁘고 힘든 일상을 견딜 힘이 생기고 답답한 마음도 좀 가벼워지고 집중력도 생기더군요. 그리고 둘째로, 다른 종교가 아닌 불교만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반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와 지혜를 줍니다. 새옹지마라고 할까요? 아니면 ‘색즉시공’에서 멈추지 않고 ‘공즉시색’까지 나아가는 것. 이것이 불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아직은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해서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자신의 감정에 휘말리기 보다는 어느 정도 담담히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건 분명합니다.”
그는 불교 동아리 모임 하나를 새로 시작했는데 아침마다 모여서 108배하고, 참선하고 경전을 읽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학점과 논문 때문에 너무 바빠서 잠시 멈춘 상태지만 몇 달 동안 꾸준히 해온 것이 참 좋았다고 그는 말한다.
이 글이 불교포커스에 실릴 때면 김승혁 선재는 대만 어딘가를 바람처럼 활보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돌아와서는 이내 주변을 정리하고 입대를 하게 될 테지. 권위에 대해 그토록 저항감을 갖던 그에게 군 생활은 어떤 의미를 안겨줄까?
젊은 세대들은 불교가 어떻게 되든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는 그의 솔직한 대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한 때 불교라는 종교가 이 땅에 있었다”라고 옛날 이야기책에서나 만나지 않으려면 나부터라도 열심히 뛰어야겠지.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줄 분들은 분명 도처에서 만날 수 있을 테니 지레 실망하지는 말아야겠지.
일단 나의 아홉 번째 선재를 찾아 나서자.
(이미령/불교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