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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다 ‘僧寶’ 아니다…평등 공동체 회복을” - 김재영 법사, 재가연대 15주년 심포지엄서 ‘개척불교’ 강조 (불교닷컴)

작성자如雲 김광하|작성시간14.12.15|조회수25 목록 댓글 0


“스님들을 출가수행자로 존중 공양하지만, 모든 스님이 다 승보(僧寶)는 아니다. 이것은 초기불경 도처에서 부처님께서 확립한 법이기 때문에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해탈을 이룬 제성현(諸聖賢)께 귀의합니다.(쌍윳따 니까야)’”

김재영 법사(참여불교 재가연대 지도법사, 청보리학생회 법사)가 사부대중의 평등한 공동체 관계 회복이 잃어버린 개척불교의 역사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동덕여고불교학생회를 시작으로 청보리 학생회를 조직해 청소년 포교에 힘 쏟아 온 김재영 법사는 현대한국불교 포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초기 찬불가 보급에도 청보리 학생회가 크게 기여했다.

김 법사는 지난13일 오후 2시 참여불교재가연대 창립 1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개척불교의 정열을 찾아서’ 발제를 통해 ‘빠리사(평등 공동체)’ 회복과 재가불자가 당당한 주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출가우월주의가 추종불교 낳았다

김 법사는 출가우월주의가 ‘추종불교’를 낳았다고 보았다. 그는 “출가는 거룩하고 출가승은 공양 받아야 마땅하다”면서 “지금 승단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오랜 법도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출가승은 민중의 정신적 귀의처로서 재가(在家)가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며 “이것을 부정하면 불교와 거리가 먼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김 법사는 출가승이 모두 승보는 아니라고 했다.

그는 출가승이 고유한 존엄성을 갖고 있어도 “출가와 재가는 어떤 신분적, 우열적(愚劣的) 관계가 아니다”며 “출가와 재가는 하나의 빠리사(parisa)로 함께 둘러(Pari) 앉는(sa) 평등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고 했다.

김재영 법사는 불교공동체를 일반적인 승가(상가, samgha, 衆)로 보지 않고 빠리사(Parisa)즉 사부대중의 평등한 공동체라고 했다.

그는 “불교는 어떤 우월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부처님도 예가가 아니다”며 “<대반열반경>에 ‘아난다여, 나는 승단의 지도자가 아니다’”고 언급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

그렇다면 승보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 법사는 “승보는 성중(聖衆, Ariya-samgha)으로 ‘사쌍팔배(四雙八輩)’”라고 했다.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부르는 8종의 위계를 갖춘 이를 말한다. 사향사과는 예류향-예류과, 일래향-일래과, 불환향-불환과, 아라란향-아라한과를 말한다. 이는 수행에 확신이 생겨 수행에 매진하고 더 이상 윤회의 세계에 물러남이 없는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간 상태를 말한다.

해탈을 이뤄야 승보…이는 붓다가 확립한 법

그는 “우리는 스님들을 출가수행자로 존중하고 공양해야 하지만, 모든 스님이 다 승보가 아니다”며 “이것은 초기불경 도처에서 부처님께서 확립한 법이기 때문에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쌍윳따 니까야(相應部, 잡아함)>의 “해탈을 이룬 제성현께 귀의합니다”라는 대목을 소개했다.

김 법사는 출가우월주의가 불교를 왜곡하고 변질시켰다며 붓다가 설한 불교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빠리사(평등 공동체)로 회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불멸(佛滅) 이후 불교는 승단(僧團)에의해 독점되고 출가는 승보(僧寶)로 미화되고, 재가는 아웃사이더(outsider)로 소외되고 배제되었다”며 “모든 것이 출가우월주의로 왜곡되고 변질되면서 ‘붓다의 불교’로부터 멀어져 갔다”고 지적했다.

  
▲ 13일 열린 참여불교 재가연대 15주년 기념 심포지엄.ⓒ2014 불교닷컴


이어 출가우월주의로 인해 “재가, 곧 수많은 민중들은 끊임없이 매달려 비는 추종자(追從者)로 살아왔고 ‘당당주인(堂堂主人)의 긍지’를 잃고 ‘개척불교의 열정(chanda)’을 잃고 살아왔다”고 했다. 출가자 중심의 기도 수행 포교가 결국 재가불자를 기복불교의 추종자로 살도록 하면서 불법의 본질을 왜곡하고 변질시켰다는 따끔한 지적이다.

김 법사는 <인도불교사>를 쓴 에띠엔 라 모뜨의 말을 인용해 출가우월주의가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세계불교의 불행이라고 보았다. 또 출가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승보가 아닌 출가자들은 부처님 제자로서의 ‘수치’라고 평가하고, ‘불교가 세계적 종교로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치명적 결함(에띠엔 라 모뜨)’이라고 했다.

출가우월주의가 불교 성장 못하게 한다

김 법사는 붓다의 삶에 불교의 답이 있다고 보았다. 붓다의 정신은 개척정신이며, 열반까지 수행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 답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붓다의 삶은 탁발과 유행했던 거친 개척정신이다”며 “항마성도이래 열반 순간까지 45년을 몸 바쳐 험난한 변방개척의 삶을 붓다는 살았다”고 했다.

김 법사는 <불설중본기경>과 <앙굿따라니까야>의 한 대목을 소개했다.

“붓다와 대중들은 헌 농장주인 아그니닷따의 초청을 받고 멀리 서북쪽 변방에 위치한 웨란자(Veranja)로 유행하셨다. 그러나 그때 흉년이 크게 들자 아그니닷따는 약속을 어기고 공양을 거부하였다. 곤경에 빠진 대중들이 마침 지나가던 상인들이 보시한 말 먹이용 보리를 얻어, 이 험한 보리로 밥을 지어 부처님께 공양올렸다. 부처님은 이 거친 보리밥을 맛있게 드시고 한 철을 보내셨다.(전법 12년, 45세)”

김 법사는 “불법개척 45년, 항마성도 이래 열반 순간까지 45년을 붓다께서는 이렇게 몸 바치는 험한 변방개척의 삶을 사셨다”며 “출가와 재가 사부의 초기대중들도 붓다의 걸음을 좇아 수없이 몸 바치며 변방을 개척하는 개척자의 삶을 사셨다”고 했다.

이어 “박해와 궁핍, 내부분열의 장애들 앞에서도 멈추지 않고 수없이 목숨 바치며 나아가는 ‘거친 개척정신’ 이것이 붓다의 정신이며 불교도의 정신이자 초기불교의 성공의 동력이었다”고 했다.

재가여, ‘당당주인’으로 평등공동체 만들라

붓다는 마지막 가르침은 자기고백과 수행정진에 미래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이제 여든 살 늙고 쇠하였구나.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듯 나 또한 가죽끈에 묶여 간신히 굴러가고 있느니라.…아난다여, 그대들 자신을 등불삼고 그대들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다른 사람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여래의 삶(Dhamma, 法)을 등불삼고, 여래의 삶을 귀의처로 삼아라.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라. 아난다여, 어떻게 하는 것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하는 것인가? 사념처(四念處)를 통찰하는 것이다. 곧 사띠(sati)하는 것이다.”(디가 니까야 16)

김 법사는 “삶이 괴롭고 죽고 싶을 때 노붓다의 고백을 외워야 한다. 자등명 법등명의 대법문을 외치고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며 “이 세상을 구할 궁극의 등불은 바로 나 자신, 이며 귀의처 역시 우리들 자신이다. 당당주인으로 떨치고 일어나 인생과 불교, 세상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붓다-빠리사-사띠’ 회복해야 불교가 산다

김 법사는 한국불교가 살 수 있는 길이 붓다의 삶에 있으며, 붓다의 삶인 거친 개척정신으로 돌아가는 방법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잃어버린 보배가 ‘붓다(Buddha)-빠리사(Parisa)-사띠(Sati)’이다”며 이를 회복해야 출가우월주의를 극복해 불교가 살아난다고 보았다.

그는 “붓다의 개척정신으로 돌아가 그의 삶을 본받고 도처에 평등한 빠리사를 만들어 둘러(pari) 앉아서(sa)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안팎으로 대면하며 사띠(sati)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붓다의 삶과 평등 공동체(빠리사) 수행(알아차림, 사띠)을 위한 개척정신이 살아나면, 교리불교, 선정불교, 출가우월주의 등 모든 불교 모든 부파가 ‘붓다의 불교’로 살아나고 우리 인생이 새롭게 빛날 것이다”고 했다.

[불교중심 불교닷컴.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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