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는 비가 옅게 뿌렸습니다만, 날은 그다지 춥지 않았습니다.
기상예보에 따르면, 이 비가 그치면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하네요.
을지로에 도착해서 차를 한 쪽에 세우고 시간이 되길 기다리는데,
어둠을 뜷고 굴다리 속으로 거사님들이 한 분씩 걸어내려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접은 박스를 머리에 이고 비를 가리며 내려가는 거사님도 눈이 띄었습니다.
날씨가 스산해서인지 등에 지고 있는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목숨을 가진 자는 누구도 먹고 마시고 자는 일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거부하면 고통이 따릅니다. 옛 사람들은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생명(生命 -
하늘이 살라고 내리는 명령)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는 이처럼 생명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고통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굴다리 안에는 벌써 수연 엄경희님이 지인 일곱 분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성 여섯 명과 여성 한 명인데, 하나같이 키가 크고 잘 생긴 건장한 분들입니다.
모두 공무원인데, 높은 분을 경호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오늘 을지로 거사님들을 위해 바나나 130개, 캔 음료수 130개,
초코파이 260개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옷가지 20여점도 함께 가지고 오셨습니다.
여기다 우리가 준비한 백설기 200개와 바나나 250개도 같이 받았으니, 오늘은
을지로 거사님들에게는 대박이 난 날입니다.
마실 것으로 커피 100잔과 둥굴레차 100잔외에, 거사님 세 분에게는 따로 반찬을 보시했습니다.
여러 거사님들이 오늘 오신 공무원 보살님들께 큰 소리로 감사를 표했습니다.
목소리 안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되돌아 봉사자들의 얼굴에도 같은 파장을 지어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갑자기 기쁨과 활력이 떠돌았습니다. 굴다리 안의 무거운 어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환한 빛이 채워졌습니다.
오늘은 엄경희님과 일곱 명의 공무원 보살님들, 퇴현 전재성 박사, 그리고 거사봉사대님들이
봉사를 해 주셨습니다. 해서 오늘은 모처럼 10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합장으로 회향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을 내 주신 보살님들께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