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 선생님"법과 등불"네이버 블로그 글]
지난 10월 22일부터 5일 동안 법등 도반들과 함께 혜능 대사의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이번 여행은 특히 대사의 출생지이며 동시에 주요 활동 무대인 광동 지역에 집중하였다. 방문한 곳은, 대사께서 육조단경을 설한 대감사(대범사), 36년간 주석한 남화선사(보림사), 40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광효사, 대사가 출생한 곳에 스스로 세운 국은사(보은사)이다. 이외에 대사의 생가, 대사가 몸을 숨긴 대유령과 운문선사가 주석한 대각사(운문사)도 찾았다. 특히 남화선사와 국은사 숲을 도반들과 함께 소요하면서 느낀 감흥은 특별하였다.
1) 의발석(衣鉢石)
대유령을 여기서는 매령 또는 황매령이라고 부른다. 대유령은 청년 혜능이 홍인의 인가를 받고 몸을 숨기자 홍인과 신수의 문인들이 뒤를 추적하며 따라온 산마루이다. 대유령은 처음 길을 내기가 어려운 험난한 곳이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의발석이다. 의발석은 혜명에게 붙잡히자 혜능이 홍인 선사에게서 받은 달마 대사의 가사를 얹어 놓은 바위이다. 혜명이 가사를 잡아당겼으나, 가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낀 혜명은 법을 청했다. 혜능은 이 자리에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시오. 바로 이러한 때에 혜명 상좌의 본래면목이 바로 거기에 있소.’라고 법문을 했고, 혜명은 이 말 한 마디에 깨달음을 얻었다.
2) 남화선사
남화선사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데 이것이 곧 조계(曹谿)이다. 조계는 조(曹)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계곡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혜능 대사의 법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장자 종단도 조계종을 표방하고 있다. 혜능 스님은 이곳 보림사에서 36년을 머물며 학인들을 가르쳤다. 보림사는 나중에 황제의 칙명에 의해 남화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화선사는 숲이 넓고 아름다웠다. 원래 절 이름이 보림사(寶林寺)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혜능 대사가 걸었을, 숲이 우거진 길을 소요하며 우리 일행에게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이 다가왔다. 도반들이 모여 함께 소요하면, 혼자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허운은 남화선사를 복원하고 운문사에 머물 당시(1951년 112세), 공산당의 박해를 심하게 받았다. 대사는 이 때 쇠막대기에 맞아 몇 달을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어야 했다. 대각사(운문사)와 남화선사에는 허운 대사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대각사 위에 있는 허운 조사당에 들러 참배를 하니 법당을 지키는 스님 한 분이 종이 두루마리를 한 개씩 우리 일행에게 선물했다. 펼쳐보니, 선사의 시가 적혀 있었다.
아홉 번 시달리고 열 번 험난한 일을 겪고 나서,
세상 일이 무상함을 깨닫게 되었노라.
삼황오제와 네 왕조를 꿰뚫어 보니,
알지 못할세라! 상전벽해가 얼마나 지났는고?
受盡九磨十難(수진구마십난)
了知世事無常(요지세사무상)
坐閱五帝四朝(좌열오제사조)
不覺滄桑幾度(불각창상기도)
- 허운선사 114세에 지은 게송
허운의 시는 참으로 지극하다. 앞의 두 구절은 육안으로 읽을 수 있지만, 뒤의 두 구절은 오직 구리 눈(銅眼)으로 보아야 읽을 수 있다.
3) 광효사(光孝寺)
광효사는 광동성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혜능이 17년간 은둔하다가 처음 모습을 나타낸 곳이 바로 광효사이다. 여기서 혜능은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다. 단경(흥성사본, 덕이본)에서는 혜능이 속인의 모습으로 광효사 법회에 나타난 장면을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날, 광효사 학인들이 모여 토론을 하다 문득 밖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법사가 이 상황을 이용하여, 바람이 부는가 아니면 깃발이 흔들리는가 물었다. 학인들은 서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깃발이 흔들린다고 대답하는가 하면, 바람이 아무리 세차도 큰 바위는 움직이지 않듯이, 깃발이 흔들린다고 해야 옳다고 맞섰다. 이에 한 중년의 속인이 나서서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오,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들은 이 말에 모두 놀랐다.
[국은사 육조기념당 내 벽조형물]
뒤에 이 말을 전해 들은 인종 법사가 혜능을 보고 혹 황매산 오조 홍인에게서 법을 받은 사람이 아니냐고 물으니, 대사가 달마의 가사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하여 혜능은 마흔 살에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다. 예발탑은 혜능이 삭발을 하며 자른 머리카락을 땅에 묻고 기념으로 세운 탑이다. 그리고 절 한구석에는 대사가 발우를 씻었다는 세발천(洗鉢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