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은 마을과 꽤 떨어져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고 외진 곳인데, 절과 가장 가까운 외딴집이 하나 있다. 그 집에 칠순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사시는데, 그 분이 여래자 보살님이시다. 여래자 보살님은 십년 전에 혼자 되셨다.
외딴 집에 혼자 사시는 분이기에 쓸쓸하고 적적하게 지내실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 쉬운데, 여래자 보살님은 목소리가 칼칼하고 우스개소리를 잘 하시는 유쾌한 분이다. 절 바로 밑에 살면서 49년 동안 절에 다녔으니 우리 절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이면 스님들이 길에 쌓인 눈을 쓸며 내려가다가 여래자 보살님집 앞까지 이르러서야 끝내게 된다. 그런 날은 보살님이 참으로 라면도 끓여주고 커피도 타주신다. 절에 과일이나 떡이 들어오면 여래자 보살님댁에 가져다 드리기도 하고 가끔은 목욕탕에 모셔다 드리고, 짜장면 먹으러 같이 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오고가며 정이 드니 남편 이야기, 아들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 등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반대로 내가 궁금해 하는 우리 절 신도들 이야기, 마을 사람들 이야기, 역대 주지스님들 이야기 등을 여래자 보살에게 들을 수 있었다.
▲ 사진=이련, 불교생명윤리협회 홈페이지 |
한번은 절에 온 방문객들이 술도 한잔하며 일행들과 노래도 부르고 싶다고 하여, 여래자 보살님댁을 소개시켜 주었다. 여래자 보살님은 그들 틈에 끼여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며 밤새도록 놀고 숙박비도 받았다고 고마워 하셨다. 여래자 보살님 같은 분들이 도시 분들과 연결되어 농사지은 것을 팔아 주거나 시골집에 찾아와서 쉬다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여래자 보살님은 49년 동안 절 밑에 사셨어도 절에 열심히 다니는 분은 아니었다. 보살님에게 절은 가끔 가다가 공양주가 없거나 절 행사를 할 때 올라와서 일해주고 품값을 받아가는 일터의 의미가 강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요즈음에 와서야 새벽예불을 처음 참여해 보았고 108배를 처음 해보았다고 고백하시기 때문이다. 한번은 같이 저녁으로 시내에 나가서 짜장면을 먹고 올라왔는데 여래자 보살님이 전화를 했다.
“스님, 저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절에 나오라고도 하지 마세요. 저는 업장이 두터워서 절에 가도 소용 없어요”라고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술을 한잔 하신 뒤라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달래고 다음날 보살님댁에 찾아가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냐고 물었다.
보살님은 무척 쑥스러워 하시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싸움을 자주했는데 남편이 싸우고 온 집에 가서 나도 욕을 많이 하며 같이 싸웠고, 남편이 덫을 놓아 야생동물을 많이 죽였는데 짐승 잡는 것을 자주 도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도는 이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저지르는 일이라며, 그것 때문에 절에 나올 수 없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절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보살님은 옛날에 싸운 것 때문에 아랫마을 아무개네 하고는 지금도 말을 안 하고 지낸다고 하시며, 자신의 업장이 두터움을 거듭 말씀하신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나로서는 하루아침에 설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요즈음에 새로 안 사실은, 보살님은 절에 오려면 돈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절에 자주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양주가 휴가를 가는 때에 절에 오셔서 며칠 도와 달라고 해도 안 올라오시는데, 그 이유가 일하고 나서 대가를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 없어도 누구나 부처님 앞에 갈 수 있는 것이고, 절에서 보시를 받는 것이 부담되면 그 보시를 법당에 가서 다시 보시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조만간 시간을 내어 보살님을 설득해 보아야겠다. 설득을 당하셔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