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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세상

욕망을 버리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 (최원형/불교포커스)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4.06.03|조회수67 목록 댓글 1

곧 녹음이 짙푸른 계절, 유월입니다. 모두가 깊은 슬픔의 시간을 지나는 가운데도 자연은 순리를 거스르는 법 없이 계절이 오고, 갑니다.
안온한 일상에 대한 감사는 큰 슬픔을 겪고 난 뒤에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마음이란 게 이렇듯 감사한 마음도 오래도록 잡아 두진 못합니다. 주변으로 한없이 치닫는 마음을 잠깐 멈추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욕심만큼 부질없는 게 또 있을까 싶지요. 채워도 채워도 끝내 채워질 수 없는 게 바로 욕심이니까요.

갖고 싶고 먹고 싶고 편해지고 싶고 풍족해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게 세상엔 너무나 많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눈이 휘둥그레지는 멋진 물건들에 마음을 빼앗기기 일쑵니다. 날마다 우리는 그렇게 욕망합니다. 그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충족될 수 없는 허망한 거라는 걸 우리는 아주 특별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의 욕망이 다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든 이들의 욕망이 이루어졌으니 이곳이야 말고 유토피아가 아닐까 싶지만, 결코 그렇게 되진 않을 듯합니다. 모든 이들의 욕망이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동시성은 가지래야 가질 수 없으니까요. 내가 물건을 싸게 산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볼 테고, 내가 많이 소유하는 만큼 누군가는 덜 가질 수밖에 없고, 내가 풍족하게 쓴 만큼 누군가는 그 대가를 떠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인도 히말라야 산 아래 있는 Leh의 빤공초 호수(이형록 사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히말라야가 흘리는 눈물을 봤습니다. 히말라야 산은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지요. 만년설과 빙하가 녹은 물은 히말라야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못을 채웁니다. 그 못은 점점 불어나서 멋진 풍경의 호수가 됩니다. 만년설 아래 에메랄드빛 호수는 얼마나 맑고 고요하던가요. 그런데 이 호수가 딱 그 상태로만 유지된다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일 텐데, 호수는 계속 커집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년설과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있기 때문이지요. 현지인들의 표현을 빌자면 엄마가 아이를 갖고 배가 점점 불러오다가 급기야 아이를 낳듯, 어느 날 호수는 예고 없이 터지고 맙니다. 그걸 일컬어 ‘빙하 쓰나미’라 부릅니다. 현재 중국, 네팔, 파키스탄 등 히말라야 인접 국가에서는 예순 번도 넘는 빙하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더욱 충격인 것은 이런 빙하 쓰나미가 될 호수들이 적어도 2만 개 이상 있다는 겁니다. 평화로운 일상에 느닷없이 빙하 쓰나미가 닥치기라도 하면 이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히말라야의 만년설과 빙하는 세계 인구 40%가 모여 사는 히말라야 주변국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상수원입니다. 만년설과 방하가 녹은 물은 서서히 흐르면서 농업용수로 식수로 쓰입니다. 히말라야 인근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포함한 숱한 생명들에게는 말 그대로 젖줄인 셈이지요. 그런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호수가 순식간에 터져서 흘러가버리고 나면 이들은 어디서 물을 구할 수 있을까요? 히말라야를 끼고 사는 주변 국가들은 홍수와 가뭄을 번갈아 겪으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 몽골, 황사가 불어오는 풍경(푸른아시아 사진제공)

네팔에서 현재 가장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호수는 해발 5,000m에 위치한 임자호수입니다. 그 호수 아래에 사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머리에 시한폭탄을 이고 사는 격입니다. 얼마나 불안할까요. 그렇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히말라야 신이 노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랍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척박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이들 앞에 왜 이토록 엄청난 재앙이 닥친 걸까요? 이 재앙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일까요? 이들의 고통 원인은 간단합니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이 풍족하게 펑펑 써댄 에너지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세상엔 두 개의 나라가 있다고 합니다. 억울한 나라와 억울하지 않은 나라, 아마도 히말라야 주변국들 가운데는 억울한 나라가 훨씬 많을 듯합니다.

얼마 전 몽골에서 나무 심는 일을 하는 국제ngo 소속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게 뭐냐 물었더니 나무를 심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땅이 너무나 메마르고 굳어버려서 도로 굴착기를 이용해서 30분 이상 파야 겨우 나무 하나 심을 구덩이를 판다는 것입니다. 몽골은 현재 전체 국토의 90%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1,166개의 호수와 887개의 강은 거친 속살을 드러내며 바싹 말라버렸습니다. 넓고 깊었던 호수가 말라가면서 싱싱한 풀을 찾기가 힘들어지자 유목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혹한이 닥치면서 많은 가축들이 죽어나갔고, 엄청난 모래바람은 모든 것을 다 뒤덮어버렸습니다. 생활 터전을 잃은 유목민들은 삶터를 버리고 도시로 나가 사막난민이 되었지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인구 50만으로 계획된 도시였지만 몰려드는 사막난민으로 인구수는 130만으로 늘었습니다. 지금 울란바토르는 교통난, 대기오염, 마실 물까지 부족해지면서 새로운 도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 몽골에서 나무심기를 하는 푸른아시아 자원활동가들(푸른아시아 사진 제공)

사막화의 원인 제공은 무엇이며, 누구일까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예후로 홍수, 가뭄, 폭염, 열파 그리고 사막화가 있습니다.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홍수와 가뭄이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몸살을 앓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기후변화는 곧바로 식량문제와 연결이 되지요. 얼마 전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 씨는 10년 내로 식량전쟁과 물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농사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비와 햇볕 그리고 바람입니다. 물론 사람의 정성도 필요하지만 이 세 가지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이기심과 탐욕은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를 뜨겁게 달구는 일이 그것이지요. 그로 인해 지구는 점점 인간이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기후를 변화시키는 대단한 능력자일까요, 우리들은. 지구를 망가뜨리는 악한일까요, 우리들은.

빙하 쓰나미, 몽골의 사막화 등은 결국 이산화탄소의 과잉 배출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것은 곧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지는 예전과 오늘의 가전제품의 크기 변화만으로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가스불로 밥을 짓던 솥은 전기밥솥에게 자리를 내 주었습니다. 이십 년 전에는 드물던 정수기가 이제 웬만한 가정에 하나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열 번도 채 사용하지 않는 정수기는 하루 종일 물을 뜨겁게 끓이고 차갑게 식히느라 전기를 써댑니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밤 시간에도 정수기는 계속 돌아갑니다. 쓰지 않는 시간만이라도 정수기 전원을 꺼둔다면 고리원전 1호기에서 생산하는 전기의 60%를 줄일 수 있습니다.

  
▲ 국가별 인구 1인당 전력소비량(kwh)


2012년 발표된 JEPIC(해외전기사업통계)에 따르면 1991년 우리나라 전력소비량은 2,412kwh 였던 것이 2012년에 8,979kwh로 3.7배 증가합니다. 반면 1991년 당시 우리나라 보다 두세 배 높았던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영국의 2012년도 전력소비량은 별로 증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래 표 참조) 이 나라들은 그동안 경제발전이 낙후되어 이렇게 전력소비량이 늘지 않았던 걸까요? 그럴리가요. 오히려 기후변화에 열심히 대응하며 이산화탄소양을 줄이려 노력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토록 많은 전기를 쓰게 되었을까요? 더구나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인데 말입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은 전력공급 위주였고, 수요를 관리하는 정책이 부재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낮은 전기요금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기요금 현실화를 포함한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요관리 정책을 통해 전기수요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억울한 국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받는 피해는 그들만의 피해로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결국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이 다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말 못하는 무수한 생명들도 기후변화로 인해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종교, 불교의 교리를 따르는 불자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부처님의 법은 아주 간단히 인과법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진리를 갈음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편리하고 풍족하게 펑펑 쓴 대가는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갖고 싶고 누리고 싶고 풍족하고 싶은 이 욕망을 지금 여기서 멈추고 나면 세상은 새롭게 열릴 듯합니다. 욕망이 멈춰진 만큼 생명의 평화가 확보될 수 있을 겁니다.

최원형_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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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碧眼 김경숙 | 작성시간 14.06.04 말씀 감사합니다..하나씩이라도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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