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체칠리아홀에서 재미 여성신학자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양승애 시카고 신학대학 교수(성서신학)와 홀리 네임즈 대학의 영성학 교수인 박정은 수녀, 조민아 세인트 캐서린 대학교 교수(영성신학)가 참여했다.
간담회에서 세 여성신학자는 미국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자신들의 삶, 가톨릭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우선 이들은 여성으로서 신학을 하는 의미를 각자 겪은 차별과 아픔의 경험과 함께 이야기했다. 박정은 수녀는 “미국에서는 백인 남자들의 견해가 기준처럼 작용해 여자이자 아시아인인 나는 주변인”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이어 영성을 “하느님 안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해석”이라고 정의하며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자리가 중요한데, 신학을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할 때는 주변인이라는 게 오히려 특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깨져 본 사람의 마음은 예민해요.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은 따뜻해요. 아팠고 소외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예수님을 새롭게 볼 수 있어요. 가톨릭교회 내에서 여성과 수녀님들은 많이 소외됐고, 내적으로 아프죠.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박 수녀는 “많은 주변인들의 체험은 기록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주변인들의 깨어진 체험을 음미하고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해 함께 나누는 작업이 신학을 연구하는 건데, 이건 많이 가진 사람은 못할 것”이라고 여성신학자로서 긍지를 느끼는 순간을 설명했다.
“여성을 통해 하느님 이해하면
교회가 더 아름답고 풍성해질 것”
양승애 교수와 조민아 교수는 여성이자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교수로 인정받지 못했던 경험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양 교수는 이런 차별의 경험이 오히려 “자신을 더 성장시켰고, 그 후에 여성학과 탈식민주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신학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수천년 동안 교회가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에 더 가깝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을 가질 수 없거나 닮지 않았다고 한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지구의 반에 해당하는 여성에게 ‘너희는 자격이 없어’라고 잘라버리면 교회의 잘못이자 손해죠. 여성들이 신학을 하고 여성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이해하면, 교회가 더 아름답고 풍성하며 깊고 넓어질 거예요. 저는 여성들의 깨어진 삶을 통해 하느님의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왔어요.”
이어 조 교수는 “하느님은 통치하거나 지배하지 않고 아낌없이 자신을 던지셨으며,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기 위해 오신 분”이라고 말하며 “여성들은 이런 하느님과 닮은 삶을 경험해왔고, 여성의 삶을 통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본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 교수는 “여성뿐만 아니라 장애나 성정체성 등의 조건 때문에 ‘하느님과 덜 닮았어’라고 하는 건 범죄”라고 말하며 “그들의 삶을 모두 포함할 수 있어야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사제서품 진지하게 고려해야…왜 안 되는지 토론이라도 하자”
“작은 돈으로도 떳떳하게 사는 신앙인과 교회 바란다”
다음으로 세 여성신학자는 가톨릭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제도화되고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를 비판하며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승애 교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려 있고 존중받는 교회에서 지난 20년 동안은 보수적인 교회로 되돌아갔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미국 가톨릭교회 내의 성추행 사건을 언급하며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숨기기만 했다”고 비판하고, “교회를 생각하면 분노를 넘어 아픔이 느껴진다”면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정말 여성들의 사제서품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입니다. 지금 당장 시행하라는 게 아니라 왜 여성들에게 사제품을 주지 않는지, 여성들이 사제품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교회가 함께 토론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토론의 자리도 못 만들게 하고 있어요.”
박정은 수녀가 바라는 교회는 “아팠고 상처받았던 자신을 하느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솔직히 드러내서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없는 곳”이라고 말하며 “교회는 건물도, 사제단도 아닌 우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수녀는 “교회가 가난에 대해 가르치지 못했고, 스스로도 진정으로 가난하게 살지 않았다”고 말하며 “작은 돈으로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신앙인과 교회여야 자본주의로 물들어 가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조민아 교수는 “교회가 원래의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하며 “여성과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게 원래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더 이상 반쪽짜리 교회로는 미래가 없어요. 살아남으려면 제정신 차려야 해요. 21세기 문화와 대화하지 않으면 교회는 죽어갈 거예요. 여성,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교회의 자리는 없어질 겁니다.”
(불교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