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oba Bhabe
본명
Vinayak Narahari Bhave
국적
인도(India)
활동분야
사회운동, 철학
출생지
인도 마하라슈트라 가고데(Gagode)
주요수상
막사이사이상(1958), 바라트 라트나 훈장(1983)
주요업적
토지헌납운동, 인도 독립운동
1895년 9월 11일 인도 마하라슈트라 콩간 지역에 있는 가고데(Gagod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에는 학교가 없었고 주민의 대부분이 문맹자였다. 할아버지는 지역의 지주였고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Brahman) 출신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어머니에 대한 깊은 회상을 남겼다. 후일 그가 사회운동을 전개할 때 어머니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라고 고백했다. 1905년 고향인 가고데를 떠나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바로다(Baroda)로 이주하였다. 어려서부터 초급학교에 다니지는 못했으나 아버지에게 학업 과제를 받아 공부했다. 이후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여행하기만을 좋아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봉사를 위한 학생협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16년 21살이 되었을 때 대학을 그만두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찾아 떠났으며 그해 6월 7일 아메다바드(Ahmedabad)에 머무는 간디의 아쉬람으로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코드랍에 있는 간디가 운영하는 수행자의 공동체인 아쉬람(ashram)에 기거하면서 분뇨을 치우고 집을 짓는 건설활동과 온갓 허드렛을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에게 강의하며 아쉬람의 수행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그는 물레를 돌리며 실을 만드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실을 잣고 베를 짜는 일이 가난을 극복하고 인도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통치를 받는 인도가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비폭력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물레를 돌리는 일이 이러한 투쟁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사티야 그라하(satyagraha) 사건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중노동을 선고 받았다. 그는 진정한 아쉬람의 생활을 감옥에서 경험하였다고 술회하였다. 무소유의 서약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감옥이며 매일 규칙적인 생활로 심신을 수행하기에 감옥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이후 1936년에도 감옥 투옥되어 6개월을 보냈으며, 1940년에 9개월 등 영국의 통치기간 동안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총 5년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다. 1936년 나병환자를 위해 나병센터를 건립하였으며 건설과 공예 외에도 봉사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1948년 스승이었던 간디가 총격으로 사망하자 한동안 자신이 인도를 위해 어떤일을 해야하는지 생각하였다. 그는 돈에 구속되는 생활을 반대했으며 자신이 돈이 없어도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돈을 포기하고도 충분하게 살 수 있는 방안들을 연구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비노바 바베에게는 너무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였기에 제자들과 함께 이 일만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현재 인도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권위적인 사회건설을 구상했으며 인도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하자 1951년 4월 부단 양가, 즉 토지헌납운동을 전개했다. 일생동안 인도 전역을 도보로 순례하면서 토지헌납운동(부단운동)을 실천하였다. 토지를 소유한 지주를 설득하여 그들이 소유한 땅의 육분의 일을 헌납받았다. 그는 6년 동안 8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순례하였고 기부 받은 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운동으로 비노바 바베가 일약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토지헌납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부 받은 땅 중에서 경작하기 힘든 황무지도 많았고 마을에서는 기부받은 땅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노바 바베는 자신이 의도했던 사회운동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추진했던 일들이 정의롭고 건전한 일이었기에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58년 막사이사이상(Magsaysay Award)의 최초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말년에는 마하라슈트라에 있는 아쉬람에서만 머물렀고 사회활동을 중단한 채 기도와 명상에만 전념하였다. 80일간 단식을 수행하다 1982년 11월 15일 숨을 거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노바 바베 [Vinoba Bhabe] (두산백과)
본명
Vinayak Narahari Bhave
국적
인도(India)
활동분야
사회운동, 철학
출생지
인도 마하라슈트라 가고데(Gagode)
주요수상
막사이사이상(1958), 바라트 라트나 훈장(1983)
주요업적
토지헌납운동, 인도 독립운동
1895년 9월 11일 인도 마하라슈트라 콩간 지역에 있는 가고데(Gagod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에는 학교가 없었고 주민의 대부분이 문맹자였다. 할아버지는 지역의 지주였고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Brahman) 출신이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어머니에 대한 깊은 회상을 남겼다. 후일 그가 사회운동을 전개할 때 어머니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라고 고백했다. 1905년 고향인 가고데를 떠나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바로다(Baroda)로 이주하였다. 어려서부터 초급학교에 다니지는 못했으나 아버지에게 학업 과제를 받아 공부했다. 이후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여행하기만을 좋아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봉사를 위한 학생협회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면서 처음으로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16년 21살이 되었을 때 대학을 그만두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찾아 떠났으며 그해 6월 7일 아메다바드(Ahmedabad)에 머무는 간디의 아쉬람으로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코드랍에 있는 간디가 운영하는 수행자의 공동체인 아쉬람(ashram)에 기거하면서 분뇨을 치우고 집을 짓는 건설활동과 온갓 허드렛을 수행하면서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사람들에게 강의하며 아쉬람의 수행자 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그는 물레를 돌리며 실을 만드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실을 잣고 베를 짜는 일이 가난을 극복하고 인도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통치를 받는 인도가 정치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비폭력 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물레를 돌리는 일이 이러한 투쟁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1923년 사티야 그라하(satyagraha) 사건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중노동을 선고 받았다. 그는 진정한 아쉬람의 생활을 감옥에서 경험하였다고 술회하였다. 무소유의 서약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감옥이며 매일 규칙적인 생활로 심신을 수행하기에 감옥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이후 1936년에도 감옥 투옥되어 6개월을 보냈으며, 1940년에 9개월 등 영국의 통치기간 동안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총 5년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다. 1936년 나병환자를 위해 나병센터를 건립하였으며 건설과 공예 외에도 봉사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1948년 스승이었던 간디가 총격으로 사망하자 한동안 자신이 인도를 위해 어떤일을 해야하는지 생각하였다. 그는 돈에 구속되는 생활을 반대했으며 자신이 돈이 없어도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돈을 포기하고도 충분하게 살 수 있는 방안들을 연구하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비노바 바베에게는 너무 중요하고 절박한 과제였기에 제자들과 함께 이 일만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현재 인도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 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권위적인 사회건설을 구상했으며 인도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서로가 의지하며 살아 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을 하자 1951년 4월 부단 양가, 즉 토지헌납운동을 전개했다. 일생동안 인도 전역을 도보로 순례하면서 토지헌납운동(부단운동)을 실천하였다. 토지를 소유한 지주를 설득하여 그들이 소유한 땅의 육분의 일을 헌납받았다. 그는 6년 동안 8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순례하였고 기부 받은 땅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운동으로 비노바 바베가 일약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토지헌납운동이 상당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부 받은 땅 중에서 경작하기 힘든 황무지도 많았고 마을에서는 기부받은 땅을 두고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비노바 바베는 자신이 의도했던 사회운동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추진했던 일들이 정의롭고 건전한 일이었기에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958년 막사이사이상(Magsaysay Award)의 최초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말년에는 마하라슈트라에 있는 아쉬람에서만 머물렀고 사회활동을 중단한 채 기도와 명상에만 전념하였다. 80일간 단식을 수행하다 1982년 11월 15일 숨을 거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노바 바베 [Vinoba Bhabe]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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