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명품 가방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철학) 2005년 어는 날, 신문 실린 글을 보고 엉엉 운적이 있다. 내용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두 수녀의 이야기였다.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두 수녀들의 이야기를 읽고 한참 울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 신문기사의 제목은 ‘올 때 소리 없이 왔으니, 갈 때도 말없이 떠납니다’였다. 제목만 봐서는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당시 70세가 넘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이름의 두 수녀가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한국에 온 것은 1962년, 당시 대한미국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보다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20대 중반의 금발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두 수녀는 한국인들도 금기시하는 ‘한센인 환자들의 섬’ 소록도로 향했다. 당시 소록도에 있던 한센인들을 이들을 ‘두마리 아름다운 학이 소독도에 찾아왔다’고 기억했다. 왜 그들은 자신들이 안주하던 오스트리아 수녀원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 그것도 나병 환자들이 집단생활을 하고 있던 소록도에 온 것일까? 그녀들의 가족들은 이 결정을 어떻게 허락했을까? 그녀들이 한국을 찾아온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신문지상을 통해 한국이라는 땅에서 한센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집단 수용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위대한 일을 결정할 때는 그 일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그러한 결정은 한순간에 단호하고도 강력하게 일어난다.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한다. 기껏해야 불우이웃돕기로 몇 푼 돈을 지로로 보낼 뿐이다. 그러나 이 두 수녀는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대한민국의 소록도 한센인들의 사진을 보고 이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꼈다. 이들은 인간으로서 최고의 덕목과 능력인 컴패션(compassion)을 지니고 있었다. 이 마음은 바로 자신으로부터 한걸음 밖으로 나가는 엑스타시(ek-stasis)의 단계며, 자신을 타인으로 채우는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는 행위다. 상대방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그들의 불행을 경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초개처럼 바치는 숭고한 노력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내가 아닌 다른 것들을 배우고 채워나간다. 그러한 배움이 타인의 삶을 내 안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첨예한 관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배워도 그는 무식한 사람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배우는 이유는 나 자신을 벗어나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연습을 통해 인간 마음에 내재한 컴패션을 ‘밖으로 꺼내기(e-ducation)' 위해서다. - 인문학적 소양이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암기나 이해가 아니라 자신을 없애고 남을 내 삶의 중심으로 삼는 컴패션이다. 우리에게 성공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두 수녀에게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이었을까? 소록도에 도착한 두 수녀는 먼저 오스트리아에 의료품과 지원금을 신청했다. 당시 한국에는 이들을 치료할 의료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센병이 전염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그녀들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정성껏 43년을 하루같이 정성껏 환자들을 껴안았다. 상상해 보라! 우리의 자녀가 43년 동안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들과 생활한다면 여러분은 찬성할 수 있겠는가?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테레사 수녀와 같이 성인들만 하는 것일까? 그녀들은 자신들의 선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일을 극히 꺼려했다. 수백 개의 감사장과 공로패가 와도 되돌려 보내졌다. 더욱더 충격적인 것은 두 수녀는 오스트리아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서야 소록도 병원 측에 이별 통보를 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순간의 삶의 의미를 가장 의미 있게 실천한 숭고한 철학자들이다. 이들의 삶은 말로만 고상한 삶을 전하는 종교인들이나 철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한다. 소록도 주민들은 20대 처녀에서 70대 할머니가 된 금발 수녀들을 ‘할매’라고 불렀다. 두 수녀는 주민들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인해 아프게 해드린 일에 대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빕니다.” 이것이 다다. 숭고한 삶에는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최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 갈 뿐이다. 두 할머니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돗단배에 몸을 실고 떠났다. 43년 동안 자식처럼 키워온 대한민국의 한센인들을 뒤로 하고 어둠을 뚫고 소록도들 떠났다. 멀리서 가물가물 사라지는 소록도를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숭구함의 결정체다. 자신들이 달려온 거룩한 삶에 대한 축하의 눈물이며 무사히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안도의 눈물이다. 이 수녀들이 소록도에서 들고 나온 짐이라고는 43년 전에 소록도에 올 때 들고 왔던 다 해진 검은색 가방 하나뿐이었다. 이들이 가방 속에는 옷 몇 가지, 다 헤진 성경책, 한센인들과 함께 찍은 흑백사진 몇 장, 그리고 그들이 써준 편지뿐이었다. 이 낡은 가방은 세상의 어떤 명품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 안에는 기막힌 역사와 이야기, 그리고 감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진한 감동은 전염성이 강해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그녀들은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봉사하면서 그 누구에 게도 “성당에 나오세요”라고 권유하거나 전도한 일이 없을 것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모마리아이며, 예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갈 가방은 무엇일까? 이 두 수녀의 검은 가방을 가지고 가고 싶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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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진행 작성시간 15.11.30 청소년기에 읽고 느꼈던 슈바이처자서전 만큼이나 감동입니다.
대중매체 뒤에 소리없이 서계셨던
<붓다를 눈이멀어, 복이없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이구절은 정목스님의 기도문중 일부ㅎ)
말법시대라고들 하지만 이렇게 빛나는 별들이 있어 나침반이 되어 주는한 우리의 여행은 계속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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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여운 김광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12.01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말법시대의 등불입니다. 이런 분들이 사는 세상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