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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이 아프다 - 시골절 주지의 귀사일기 (불교포커스)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6.30|조회수96 목록 댓글 0

누구는 이빨은 짐승에게나 하는 소리고 사람은 치아라고 해야 한다고 충고를 주지만 그런 걸 따질 만치 한가하지 않다. 이빨이 아프다. 범종을 치면 한동안 웅~ 하고 울리듯, 통증이 잇몸에서 좌측 머리까지 신경을 타고 올라가면서 범종처럼 울린다. 해머로 머리를 때린 것처럼, 생 이빨을 뽑아내는 것처럼, 벌떼들이 몰려들어 폭격하는 것처럼 아프다. “아! 삶은 고통이구나”라는 탄식이 절로난다.

왼쪽 이빨뿐만 아니라 오른쪽 이빨도 충치가 심해서 어느 쪽으로도 음식을 씹기가 쉽지 않다. 배는 고프지만 식욕이 없고, 밥먹는 일이 하나도 즐겁지가 않다. 어금니 하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물건인 줄 아파보니 알겠다. “젠장! 아파보니 알겠다.”

 

오래 전부터 오른쪽 이빨이 문제가 생겨서 한동안 왼쪽으로만 씹었다. 언젠가 증명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가니 사진사가 “한쪽 치아가 불편하신가 봐요? 얼굴이 균형이 안 맞네요.”라는 말을 하였다. “네, 오른쪽 치아를 덮어 씌웠는데 문제가 생겨서 걷어내고 그냥 방치해두고 살다보니 한쪽으로만 음식을 씹게 되었네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이후로 한쪽으로만 씹어서 인상이 변했다는 말에 은근히 신경을 쓰고 살았는데 지금은 양쪽이 다 아파서 밥을 못 먹는 지경에 이르니 인상 걱정 하며 살던 때가 꿈인 듯 그리워졌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그동안 원하던 다이어트는 저절로 되겠는데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불만과 불평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날까 걱정이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면 먹는 즐거움을 하나 잃어 버렸으니 그만큼 번뇌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언젠가 예전부터 아는 스님과 밥을 먹으러 갔는데, 갑자기 입에서 틀니를 빼고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 저 스님이 벌서 틀니를 했구나”라는 충격은 그 뒤로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곧 틀니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렇게 몸은 점점 삐거덕거리고 망가져가니 발심수행장에 ‘파거불행破車不行이요 노인불수老人不修’(부서진 수레는 나아갈 수 없고 늙어서 정진하기는 더욱 어렵다)라는 말이 저절로 입가에 새어나온다. 경허스님 참선곡에도 어영부영 살다가 죽음에 당도하여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 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는 듯 오장육부五臟六腑 타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누가 알꼬” 한탄하는 구절이 나온다.

 

죽을 때 고통도 고통이지만 치과에 가서 치료받는 것 또한 장난이 아니다. 이빨 아픈 것만 빼면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을 갈아대는 소리를 듣는 것은 소름끼친다. 마취주사만 아니라면 그대로가 지옥에 잡혀와 간수들에게 고통 받는 장면일 것이다. 평소의 여유와 웃음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크게 입 벌린 채 손을 마주잡고 가련하게 고통을 참고 있는 불쌍한 생명체가 하나 헐떡일 뿐이다. 그동안 여기저기가 아파도 생로병사가 고통이라는 말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어금니 3개가 생명의 실상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우리절 신도님들은 앞으로 예전보다 겸손하고 겸허해진 주지스님을 만나게 될는지 모르겠다.

 - 시골절 주지의 귀사일기 (불교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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