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 류영모 선생은 진정한 기독교 영성인입니다. 유교 불교에도 깊은 분으로
노자도덕경에 대한 주석서도 쓰셔서 제가 한 번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우연히 주위에서 다석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다시 한 번 다석선생의 말씀을 옮겨 봅니다.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1890~1981)
다석 류영모는 온 생애에 걸쳐 진리를 추구하여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른 우리나라의 큰 사상가이다.
젊어서 기독교에 입신(入信)했던 다석은 불교와 노장(老莊), 그리고 공맹(孔孟)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 철학 사상을 두루 탐구하여 이 모든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뚫는 진리를 깨달아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정신적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다석은 우리나라 3천재, 5천재의 하나라는 말을 들었고, 평생을 오로지 수도와 교육에 헌신하면서
일생동안 '참'을 찾고 '참'을 잡고 '참'을 드러내고 '참'에 들어간 '성인'이다.
이승훈, 정인보, 최남선, 이광수, 문일평 등과 교유했고, 김교신, 함석헌, 이현필, 류달영 같은 이들이 다석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철학자대회(2008년)에서 제자인 함석헌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소개될 만큼 다석의 사상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개역성경)
하느님이 주신 얼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는 하느님이 예수의 마음속에 보낸 얼나가 예수 자신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깨달은 것이다.
예수는 참나(얼 나)와 길, 참나와 진리, 참나와 생명이 둘이 아닌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참나(얼나)를 길(道)로 표현한 이가 노자(老子)요, 참나(얼나)를 진리로 표현한 이가 석가요,
참나(얼나)를 생명으로 표현한 이가 예수다. (1956)
▶ 이 세상이 괴로운 까닭을 원죄(原罪)로 돌리는데, 이 사람이 늘 하는 얘기지만,
원죄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삼독(三毒: 탐진치)을 말한다.
우리는 이 삼독의 원죄를 피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가 무엇을 따먹어서 그의 자손이 이같이 되었다고
자손들에게 죄다가 뒤집어씌우는데 그따위 말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일종의 신학으로 그렇게 생겨 나온 것이다.
스스로 우리 자신을 반성해보면 알 수 있다. 못된 뿌리가 세 개가 있음을 누구나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삼독을 우리는지워버리는 데 힘써야 한다. (1957)
●이 똥오줌으로 가득 찬 이 세상 더러운 땅 예토(穢土)를 님어서야
깨끗한 나라 정토(淨土)에 이른다. 정토가 하늘나라요 니르바나 나라
이다. 하늘나라에는 가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覺) 것이다. 깨달으면
'있다시 온이' 여래(如來)가 된다. 여래란 있어서 있는(있게 해서 있는
것이 아닌) 하느님 나라(얼나)가 왔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얼나
(靈我)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얼의 나라(얼나)에는 늙음도, 앓음도, 죽
음도, 괴롬도 없다. 영원한 생명(얼나)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몸나가 없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앞에는 얼나가 있다. 하느
님이 계시는 곳이 제계(彼岸)다. '제계 가온(歸一)' 이것이 사람이 나
아가야 할 길이요 이루어야 할 참이다. 제계 가온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요 얼나를 깨달음이다. 하늘나라는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자각(自
覺)과 천국(天國)이 둘이 아니다. 얼나와 하느님은 하나이다.
사람은 식색(食色)의 수성(獸性)을 지닌 제나(自我)를 넘어서야 한
다. 식색의 제나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은 아직 얼나가 다스리는 의식인
정신(情神)이 없다. 정신은 얼나가 제나의 수성(獸性)을 다스릴 때 정
신이 나타난다. 땅에 하늘나라가 임한 것이다. 정신의 세계만 자성존지
(自性尊持)하는 나라이다. (1957)
●제나(自我)가 죽어야 참나인 얼나로 살 수 있다. 제나가 온전히 없
어져야 참나인 얼나가 드러난다. 참나(얼나)가 우주의 임자요 제나(自
我)의 임자(主님)이다. 제나(自我)의 임자란 제나의 수성(獸性)을 다
스려 수성에서 해탈한 자유인(自由人)이란 뜻이다. 이러한 자유인이라
야 남을 나로 생각해줄 수 있다. 제나(自我)가 죽어 내 마음이 깨끗해
지면 하느님을 볼 수 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말은 제나(自我)의 수
성 (獸性)을 죽여 부귀 (富貴)를 초월했다는 말이다.
참나(眞我)와 하느님이 하나다. 참나가 얼나이다. 참나(얼나)로는 나
의 생명과 하느님의 생명이 하나다. 참나(얼나)와 하느님은 이어져 있
다. 그리하여 무한(無限)과 유한(有限)이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선
미 (眞善美)의 영원한 생명이다. (1957)
●나는 생각한다. 나를 위해 생각한다. 생각의 중심이 나다. 나는 있
다. 나는 참이다. 이 나는 예(땅)에 있는 나가 아니라 계(하늘나라)에
있는 나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다. 그래서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
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한 18:36-개역성경)라고 말했다.
성경 불경을 읽다가 모르더라도 그대로 자꾸 읽어 나가야 한다. 성경
이고 불경이고 자기의 정도대로 알아 가는 것이다. 성령(얼나)을 받아
돈오(鑛悟)를 하면 한꺼번에 다 될 줄 알아도 그렇지 않다. 석가도 단
번에 모든 것을 다 알은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돈오(碩悟) 뒤에도 점
수(漸修)를 해야 한다. 돈오도 한 번만 하고 마는 게 아니다. 줄곧 깨
달아야 한다. 인생의 길이란 꽉 막힌 것 같다가도 확 트이는 수가 있고
탁 트였다 싶다가도 또 꼭 막히고 그런 것이다. 삶이란 그저 깨자는 것
이다. 깨달아서는 월 하나 일어서야 한다. 영원한 생명(얼나)으로 서는
것이다.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