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쩐지 나는 수십 년 전부터 마음을 허공 같다고 생각한다.
허공은 저 위에 있는 것인데 맘을 비우면 허공과 같을 것이다.
우리 맘을 비우면 하느님 나라도 들어온다. (1960)
▶ 나는 20살 전후에 불경과 노자(老子)를 읽었다. 그러나 없(無), 빔
(空)을 즐길 줄은 몰랐다. 요새 와서야 비로소 빔(空)과 친해졌다. 불
교에서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해야 빈데 갈 수 있다
고 한다.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는 한 빔에 갈 수가 없다. (1960)
▶ 마음과 허공은 하나라고 본다. 저 허공이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이 저
허공이다. 여기 사는 것에 맛을 붙여 좀더 살겠다는 그따위 생각은 하
지 말자. 마음하고 빈탕(허공)이 하나라고 아는 게 참이다. 빈탕 허공
에 가야 한다. 마음이 식지 않아서 모르지 마음이 식으면 허공과 하나
된다. 허공이 마음이고 마음이 허공이라는 자리에 가면 그대로 그거다.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아니다. 불경이니 성경이니 하는 것은 마음을 죽
이는 것이다. 살아 있어도 죽은 거다. 제나(自我)가 한 번 죽어야 마음
이 텅 빈다. 한 번 죽은 마음이 빈탕(太空)의 마음이다. 빈 마음에 하
느님 나라, 니르바나님 나라를 그득 채우면 더 부족이 없다. (1960)
▶ 장엄(莊嚴)은 정말이지 허공이 장엄하다. 허공의 얼굴인 공상(空相)
이 장엄하다. 이 우주는 허공을 나타낸 것이다. 이 만물들이 전부 동원
해서 겨우 허공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못끝 같은 물(物)만 보고 허
공을 못 보다니 제가 좀팽이 같은 것이라서 물(物)밖에 못 본다. (1961)
▶ 이 만물이란 허공을 보라는 건데 만물(物)만을 보고 허공은 못 본
다. 꽃을 봐도 그 꽃과 허공의 마주치는 곳이 선(線)을 이루는데 꽃만
보았다고 하고 허공은 못 봤다고 한다. 인도 사람은 색즉시공(色卽是
空) 공즉시색 (空卽是色)이라 했다.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