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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허깨비가 허깨비 고을에 들어 - 허응당 보우스님의 임종게를 읽으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4.01.28|조회수12 목록 댓글 1

허응당 보우스님은 우리 선원 옆에 있는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분입니다. 봉은사에서는 작년 10월, 봉은사 중창주로서 보우스님을 기리기 위해 허응당 보우대사 봉은탑을 제막하였습니다.


보우스님의 임종게를 보면, 가히 스님의 높은 수행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보우스님은 몸을 허깨비(幻人)로 표현하셨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이 설하셨듯이, 몸뚱이가 허깨비라는 말은 몸의 근본이 공(空)한 도리를 뜻합니다. 이 공성의 도리는 몸을 무시하거나 허무하게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성에 대한 깨달음은 곧 욕망과 집착에 빠져 몸과 마음의 경계를 실답게 여기는 일체 중생을, 위없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보살행과 함께 합니다.

 

불교에서 몸이 허깨비라고 표현할 때, 그 속에는 이토록 심오한 공성의 깨달음과 중생을 제도하는 대자대비의 보살도가 숨쉬고 있습니다. 다음은 보우선사의 임종게입니다.

 


허깨비가 허깨비 고을에 들어

오십여 년을 미치광이처럼 놀았네

인간의 영욕을 다 겪고

중의 탈을 벗고 푸른 하늘에 오른다.

 


幻人來入幻人鄕 (환인래입환인향)

五十餘年作戱狂 (오십여년작희광)

弄盡人間榮辱事 (농진인간영욕사)

脫僧傀儡上蒼蒼 (탈승괴뢰상창창)

 

(동국대학교 역경원;<한글대장경> 김상일 번역)

 

 

선종양과의 시험제도를 부활시킨 보우스님은 서산대사 휴정(休靜)과 그 제자 사명대사 유정(惟政)을 배출하였습니다. 휴정과 유정 두 스님은 알다시피 그 후 임진왜란에서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큰 보살행을 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사명대사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일본에 몸소 가서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오시는 길에 전쟁중에 잡혀간 우리 백성 3,500여명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이는 돌아가신 스승 서산대사의 유지이기도 하였습니다.

한 편, 보우스님은 그 후 유생들의 참소로 제주도로 유배를 당했고, 마침내 제주목사에게 비참하게 주살당하였습니다. (당시 언관이던 율곡은 귀양을 주장했고, 퇴계는 치죄(治罪)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 중의 탈을 벗고 푸른 하늘에 오른다 -


보우스님의 임종게중 마지막 구절은 참으로 읽은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보우스님의 임종게는 허공의 주인공으로서 이름뿐인 몸을 굴리는 대승 보살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혼백이 허망하게 하늘에 오른다고 이 글귀를 해석한다면, 보우스님의 뜻을 크게 그르친 것입니다.

 

여운(如雲)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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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반야심권오영 | 작성시간 14.0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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