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마음속 고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해결되지 않거나 그 속을 벗어날 만한 통찰이 일어나지 않으면 응어리가 됩니다. 그래서 후회와 탄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후회와 탄식을 가져오는 일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곰곰이 바라보면 응어리의 본질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와 그렇지 못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겪는 고통이 끝내는 응어리가 되지요.
수행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부터 1,000년 전 일이지만, 남송시대 선지식 대혜종고 스님(A.D. 1089-1163)이 겪었던 고통 또한 누구나 공감할 응어리입니다. 대혜선사는 30대 중반에 응어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평상시에는 부처님과 스승의 가르침대로 행실이 원만하고 자신의 이상대로 몸과 마음이 움직여지는데, 꿈에서 만은 뜻과 같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진실한 수행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 겪기 마련입니다. 스님은 자신의 고민을 스승에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부처님께서 칭찬하신대로 여법하고 행하고, 부처님께서 꾸짖는 대로 감히 계를 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스승에 의지하여 제가 스스로 공부하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은 정신이 맑은 때는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도 문득 침상에 누워 반쯤 깨고 반쯤 잠이 들 때면, 주인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꿈에서 금과 보배를 얻으면 꿈속에서도 무한히 기뻐하고, 꿈속에서 사람이 칼과 몽둥이로 핍박하거나 여러 나쁜 경계를 당하게 되면, 곧 두려워하고 공포에 떱니다.
지금 제 몸이 멀쩡하지만, 단지 꿈에만 떨어져도 주인노릇을 하지 못하는데, 지수화풍이 다 흩어지고 모든 괴로움이 불처럼 일어나면, 제가 어떻게 경계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조급해지기만 합니다.”
- 대혜 서장(書狀) - 향시랑 백공에게 답하는 편지 일부 인용
그러나 스승(원오극근)은 대혜스님에게 그저 "망상을 쉬어라, 망상을 쉬어라.(休妄想 休妄想)"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네가 허다한 망상이 다 끊어진 때라야, 네 스스로 자나 깨나 늘 하나인 경지에 이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혜스님에게는 이 말이 그저 먼 메아리 소리일뿐이었습니다.
이렇게 혼자 속을 태우며 살다가, 하루는 우연히 스승 원오선사가 “모든 부처님이 나온 곳에는 훈훈한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온다.(諸佛出身處 薰風自南來)” 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홀연히 가슴속 애응지물((礙膺之物 - 응어리)이 사라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렸으니, 당위와 현실의 갈등이 사라진 것입니다. 대혜스님은 그 때의 감격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문득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참으로 진실한 말씀이며 실다운 말씀이며 한결같은 말씀이며, 미치지 않은 말씀이여, 거짓말이 아니며,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부처님은 대자대비 하시어, 몸을 가루로 만들고 목숨을 바쳐도 갚을 수 없습니다.
가슴속 응어리가 다 없어져, 문득 꿈꿀 때가 바로 깨어 있는 때이며, 깨어 있는 때가 바로 꿈 꿀 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한 깨있거나 잠자거나 늘 하나다’는 도리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 도리는 남에게 드러내 보이거나 줄 수 없으며, 남에게 말해줄 수도 없습니다. 마치 꿈속의 경계처럼 붙잡거나 버릴 수 없습니다. "
대혜스님이 애송하는 시는 당나라 때의 재가도인 방거사의 게송입니다. 이 시를 보면, 응어리를 파낸 대혜선사의 속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있는 것을 비우려 할지언정,
오직 없는 것을 채우려하지 말라.
(但願空諸所有 切勿實諸所無)”
수월스님은 근대 한국의 대선지식 경허선사의 맏제자였지만, 오직 중생을 위해 머슴노릇을 한 보살입니다. 여러 곳에서 조실로 모시려 하였지만, 모두 뿌리치고 간도에 갔습니다. 스님은 간도에서 머슴 중으로 일하며 자기가 받는 품삯으로 밤을 새워 짚신을 삼고, 낮에는 소치는 짬짬이 틈을 내어 큰 솥에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습니다. 일제의 학정으로 살 곳을 찾아 간도로 건너오는 동포들을 위해 길가 바위 위에 주먹밥을 쌓아 놓고 나뭇가지에 짚신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수월선사의 삶은 유마경에 나오는 게송 그대로 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見須供事者)
머뭇거리지 않고 심부름꾼과 하인 노릇을 한다(現爲作僮僕)
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 뒤에는(旣悅可其意)
마침내 도심(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乃發以道心)
- 유마경 불도품(佛道品)
일찌기 청담스님은 수월선사의 명성을 듣고 간도를 찾았습니다. 1년 동안 만주에서 수월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던 청담(1902~1971)스님은 스승이 손수 만들어준 주먹밥과 짚신을 받아들고 수월스님에게 마지막 절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수월스님은 갑자기 청담에게 곳간에 가서 괭이를 가져오라고 시켰습니다. 괭이를 가져오자 수월스님은 바로 마당에 박혀 있는 돌멩이를 가리키면서 물었습니다.
“저게 무엇인가?”
“돌멩이입니다.”
청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월스님은 괭이를 빼앗아 들더니 돌멩이를 쳐내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청담스님은 이 가르침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합니다. 수월스님의 괭이는 참으로 가슴속에 묻혀있는 응어리를 파내버릴 산 법문입니다.
여운(2015.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