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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지금 여기>의 장벽 - 부처님오신날을 맞으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5.09|조회수37 목록 댓글 0

부처님은 해탈을 얻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나는 이미 인간과 천상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인간과 천상의 속박을 벗어났으니,

인간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을 제도하고 많은 이익을 주어

인간과 하늘을 안락하게 하라.”

 - 잡아함경 제39권 1096. 승삭경(繩索經)


위 말씀은 부처님의 전도선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 당시 바라문들은 불변의 아트만(자아)을 위하여, 장엄한 제사를 지내며 현생과 내생의 복을 빌었습니다. 제사에는 수많은 짐승을 죽여 희생을 삼았으며, 그 대가로 보시를 받아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폭력, 탐욕과 분노 등의 고통을 외면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바라문들의 위선에 맞서 진정한 해탈의 길을 탐구하였습니다.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무상과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달았으며, 탐욕과 분노를 없애는 자비와 팔정도를 해탈의 길로 제시하였습니다.


부처님이 가르치는 행복과 해탈은 이처럼 철저히 내적 성찰의 길입니다. 따라서 제사와 주문을 거부하는 불교가 전해지는 곳에서 바라문들은 종교적 권위를 잃고 부를 축적할 수 없었으니, 그들은 부처님을 찾아가 모욕을 주었고, 전법(傳法)를 방해하였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인간 세상에 나가 많은 사람을 제도하고 이익을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불교의 명상(선정)은 기쁨과 행복, 나아가 깨달음과 해탈을 가져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결박에서 벗어났습니다. 이처럼 결박의 조건을 성찰하고 자유를 얻는 일은 불교의 오랜 전통입니다. 벽암록의 저자 원오극근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사의 가르침은 그대의 끈끈한 속박을 풀고,

그대를 얽어매는 쐐기를 뽑아주려고 하는 것이다.” 

- 벽암록 제15 운문도일설(雲門倒一說)


선불교가 중국에서 크게 일어난 것은 당대 중국 사람들의 미망과 쐐기를 걷어주는 역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시대 이후에 경전보다는 선사의 어록이 더 널리 읽힌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2,500여년이 지난 오늘은 부처님 시대와 다릅니다. 당연히 중국 당송시대와 오늘 우리를 묶는 결박도 같을 수가 없지요. 비록 고통의 본질은 같다고 말할 수 있어도, 현실에 나타나는 형태는 같을 수 없습니다. 최근 유럽에서 성행하고 있는 삼보종(Triratna Buddhist Community) 등 몇 몇 서양의 불교모임을 보면, 복잡한 사회에서 오는 긴장된 마음을 쉬기 위해 초기불교의 명상에 의지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고통은 지금 여기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랑과 우정을 외면하고,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우리 시대의 결박은 무엇인지요?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는 장벽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제의 수탈과 육이오 전쟁 이후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다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화두입니다.


사람 사이의 장벽은 더불어 사는 기쁨을 막고 마침내 삶의 의미를 잃게 합니다. 그러나 장벽은 이제 자기를 보호하는 수단으로까지 여겨지는 실정입니다. 사랑과 자비, 겸손과 가난 등 종교의 가르침도 이익과 명예의 장벽 앞에서는 철 지난 의미 없는 말이 되고 있습니다. 수행의 형태는 옛과 같은데 참사람이 나오지 않고, 장엄한 예식의 장벽 앞에 소박함과 침묵의 가치는 날로 빛을 잃고 있습니다.


작년 8월 한국을 방문한 가톨릭 교황은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서 일한다”며 “사목자들은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교황의 지적은 우리 불자에게도 큰 죽비입니다.


장벽이 우리 삶의 위기로 다가올 때, 우리는 장벽의 원인과 조건은 무엇이며  그것을 소멸시키는 길은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위기의식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를 곧바로 직면하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장벽은 마음의 무명(無明)이지만, 그 원인을 모색하는 길은 어둠 속을 걷는 것과 같이 진지하고도 겸손한 수행입니다. 그 길은 경전의 뜻을 풀이하며 현실을 해석하는 행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는 5월 25일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의 길을 버리고, 가장 천하고 힘든 탁발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왕자로 있으면서, 탐욕 분노 교만 인색 등 생노병사의 속박은 정치와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울삼아 지금 여기 우리의 속박과 장애를 성찰하는 일은,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선언한 것과 같이, 우리 자신을 제도하고 세상에 기쁨을 주는 길입니다. 

(2015. 5. 9. 如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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