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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개뼈다귀를 팔러 다닌 포대화상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6.07.15|조회수65 목록 댓글 0

포대화상은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이다. 스님의 법명은 계차(契此)인데, 뜻은 이 한 도리에 계합했다는 뜻이다. 스님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뚱뚱한 몸집에 웃는 얼굴이다. 배는 둥글게 늘어져 보는 이에게 편안함과 친근감을 준다. 늘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때로는 포대에서 과자를 꺼내어 아이들에게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스님을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

 

포대스님은 걸식을 하고 살았는데,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리고 일정한 주처가 없이 비바람을 맞으며 천하를 주유하였다. 스님은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뼈다귀 사시오. 개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이 세상에 개뼈다귀를 누가 사겠는가? 개뼈다귀는 우선 먹을 게 없다. 설사 삼켜도 목에 걸려 넘기지 못한다. 토하다 보면 결국 힘이 다해 자칫 큰 해를 입을 수 있다.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쓸모가 있는 것을 산다. 세속에서 힘들게 학력과 인맥을 쌓는 것은 재산을 늘리고 명예를 얻는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해탈과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도 이와 같은 쓸모를 주는가?

일찍이 양나라 왕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나 물은 것도 같은 뜻이 있었다. 양무제는 생전에 많은 탑을 짓고 손수 불경을 강의한 왕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달마대사를 만났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으므로 만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그냥 수행을 위해 전해지는 말로 보아야 한다.)

 

“짐이 그 동안 절과 탑을 수없이 지었는데, 그 불사의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조금도 없습니다.”
“,,,,. 이렇게 말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모릅니다.”
- 벽암록 제1칙. 달마는 모른다고 하다(달마불식 達摩不識)

 

달마대사는 양무제에게 공덕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절을 짓는 등 착한 일을 많이 하면 큰 공덕을 얻는다는 경전의 말을 믿는 양무제는 달마대사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달마대사는 아직 법을 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 숭산 소림사에 몸을 감추었다. 뒤늦게 달마대사의 존재를 알게 된 양무제는 다시 불렀으나, 대사는 끝내 응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는 여섯 가지 길(육바라밀)을 가르쳤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모든 수행을 하면서  그 속에 '내가 닦는다'든가 '내가 얻는다' 또는 중생을 제도했다'는 관념이 없어야 깨달음에 이른다고 말씀했다(금강경). 오랜 세월동안 참선을 하고 중생을 제도해도, 내가 이만큼 성취했다는 관념이 없어야 깨달음에 이른다는 뜻이다.

 

양무제가 수없이 행한 불사는 해탈을 위한 수행인가 아니면, 자신의 공덕을 얻기 위한 욕망인가? 자신이 쌓은 공덕의 크기를 묻는 양무제의 마음속에는 어떤 인식이 숨어 있는가? ​

양무제의 물음은 오늘 우리 현실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화두이다. 참선을 하거나 간경을 하며 누가 더 오래 수행을 했는지, 어느 스승밑에서 공부했는지, 우열을 따지고 서로 논쟁하지는 않는가? 남을 도울수록 명예를 추구하는 이 모든 모순과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고통의 대가를 치르며 얻는 명예나 칭송일수록 그 수행에 집착하기 쉽다. 깨달음을 얻기위해 불법을 닦았지만, 그 수행이 도리어 집착과 교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관자재보살은 사리불 장로에게 모든 법에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며, 이 진정한 앎(반야바라밀)으로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했다(반야심경).

 

수행을 할수록 자기가 성취한 모든 공덕을 내려놓는 것이 올바른 수행이라면, 이러한 수행은 어떤 수행인가? 수행을 통해 성취한 자신의 공덕이 문득 공(空)함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은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과연 쓸모가 있는 것인가? 

개뼈다귀를 사라고 외친 포대화상의 뜻은 참으로 깊다고 하겠다. 쓸모없는 물건에 누가 돈을 내놓으랴! 그러나 개뼈다귀를 사려면 집안의 주춧돌을 뽑아 버려야 살 수 있으니, 포대화상의 개뼈다귀는 참으로 비싼 물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포대화상의 뜻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옛 시인은 포대화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一鉢千家飯   바릿대 하나로 천호의 집에 밥을 빌고
孤身萬里遊   외로운 몸으로 만리를 노니네
靑目覩人小   포대스님의 푸른 눈을 아는 이가 적으니
問路白雲頭   하늘가 흰 구름에게 갈 길을 묻는구나. 

 

포대화상의 개뼈다귀는 참으로 불법의 핵심을 밝힌 심오한 법문이다. 개뼈다귀는 맛도 없고 삼킬 수도 없으며, 몸에 지니고 다녀도 집안에 깊숙히 간직해도 아무 쓸모가 없다. 거기다 칠을 하고 복을 빌 이유도 없다. 그러나 이 개뼈다귀를 사면 평생의 짐을 벗게 된다. 중생들에게 화살같은 해탈법문을 편 포대선사를 기리며 소감을 올린다.

 

혀를 대기 전에 맛을 보고
입을 열기 전에 삼킨다
누가 알랴!
물 속의 달이 진짜 달인 것을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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