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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이번에 떠나시거든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6.08.12|조회수56 목록 댓글 0

아침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이 가장 더운 날이라고 합니다. 더위가 하루하루 기록을 갱신하니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경북 영천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으면서 올해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고, 대구는 37.8도, 서울도 36.4도까지 올랐습니다. 오늘 서울의 낮 기온이 36도라고 하니 어제만큼이나 덥겠습니다.

더울수록 기운이 빠지고 마음마저 늘어집니다. 해서 더위를 쫓아낼 시원한 소식을 찾게 됩니다. 요사이는 리우에서 오는 메달 뉴스가 가장 시원한 소식이지만, 옛 사람들은 더울 때는 <장자>를 읽고, 겨울에는 <논어>를 읽었습니다. 장자를 읽으면 마음이 호방해지니 여름에 읽기 제격이고, 논어는 옷깃을 여미고 읽어야 하니 겨울에 알맞습니다. ​

송나라 때 절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총림성사>에는 더위를 물리치는, 정신이 번쩍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법정(法淨)스님은 무주 영응사 강주(講主)였습니다. 법정은 명성이 높아 많은 사람들의 귀의를 받았습니다. 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절을 크게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전생의 악연인지 가까운 후배스님에게 주지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법정스님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평소 안면이 있는 같은 고향출신인 세도가 섭승상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편지를 본 승상은 이렇게 답장을 썼습니다.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과 저는 지난 세상부터 인연이 있고, 한 고향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며, 누가 물으면 같은 고향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스님의 본분이 강백이며 영응사에 주지하는 40년 동안에 기와더미만 쌓여있던 곳을 아름다운 사원으로 가꾸었고, 금어(金魚)와 북소리가 일 년 내내 그치지 않게 했으므로 사원을 일으켰다고 자부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힘들여 짓는 보전(寶殿)이 준공되려는 즈음에 파계승 후학이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켜 교묘한 계략으로 스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 하니,세간의 생각으로 논한다면 까치집에 비둘기가 사는 격으로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

그러나 스님의 본분으로 말한다면, 나의 몸도 나의 것이 아니며 모든 법이 한낱 꿈이요 환상이니, 영응사라 하여 어찌 오래도록 스님 혼자만의 생활터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머물 땐 외로운 학이 소나무 꼭대기에 차가운 날개를 쉬고 있는 듯하고, 떠날 땐 조각구름이 잠깐 세상에 스쳐가듯 한다’고 하였으니, 떠나고 머무는 것에 깨끗이 처신한다면 무슨 매일 것이 있겠습니까. 머물려 해도 머물 것 없어야 바야흐로 떠나고 머물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

이번에 떠나시거든 푸른 소나무 아래 밝은 창가에 편히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사대사(生死大事)의 인연을 깨닫는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태수에게서 도움을 빌리려 한다면, 그것은 겨드랑이에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만법이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면, 스님에게는 범부가 성인으로 탈바꿈되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허리춤을 싸쥐고 어서 저 신부(新婦)나 맞으러 가십시오.” 

- 총림성사 (장경각)​

 

제 주위의 한 분은 위의 섭승상의 글을 보고, 이런 눈 밝은 사람이 재가에 있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백봉선생님의 말씀처럼, 깨달음은 출가자의 전유물이 아니요, 모든 생명의 권리요 의무인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승상의 편지를 읽으면서 한 편 재가자로서 긍지를 느끼면서도, 그만한 공부를 이루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성철스님은 용맹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요,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공부하는 자리에서 말하자면, 남이 평생 일구어 놓은 절을 빼앗고자 욕심을 내는 후배스님도 문제이지만, 평생 고생해서 만든 이 절은 '내 것'이라고 집착하는 법정스님도 문제입니다. 물론 이런 말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공부가 부족하면 누구나 쉽게 경계에 넘어갑니다. ​

법상에 앉아, 가는 곳 마다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설법하기는 쉬워도, 막상 유혹을 만나면 누구도 경계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위 현실을 보면, 잘못이 드러나 사과하는 사람은 있어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은 보기 어렵습니다. ​요사이 정치판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부처님은 일찍이 수행자가 빠지기 쉬운 어리석음을 누누이 경계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헛된 특권을 바란다.
수행승 가운데 존경을, 처소에서는 권위를,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는 공양을 바란다.

그는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여기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나 하면 안 될 일도
​‘오로지 나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읨(원리 遠離)을 닦아야 하리.
​- 법구경 제5 <어리석은 자의 품> 

 
 

요리를 책으로 맛 볼 수 없듯이 허공의 도리를 말이나 지식으로는 맛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공성의 맛을 본 사람은 성과에 집착하며 시비를 따지지 않습니다. 이 모두가 눈 속에 어른거리는 헛꽃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루어 놓은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기득권에 대한 유혹이 큽니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그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

임제선사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가 공(空)한 도리를 알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황벽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선의 제일서라고 말하는 임제록의 주인공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집착은 참 놓기 어렵습니다. 삼세의 시간(과거 현재 미래)이 공하다는 사실을 지식으로 알아서는, 시간이 끊어진 기쁨과 시간을 굴리는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임제선사의 만년의 모습을 보면, 진정한 수행자의 길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스님의 말년 어느 날 병란이 일어나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남쪽 대명부에 있는 흥화사라는 절인데, ​그곳에는 이미 제자 흥화존장스님이 교화를 펴고 있었습니다. 방장인 흥화스님은 스승 임제선사를 동당에 모시고 한주(閑住)로 잘 받들었습니다. 평소 폭포와 같은 법문을 쏟아내기로 유명하던 임제선사는 그곳에서 일체 말이 없었습니다. 임제스님의 만년의 모습을 <임제록>은 이렇게 전합니다.

구리로 만든 물병, 쇠로 만든 발우처럼,

​방문을 닫아걸고 말이 없었다.
소나무가 늙고 구름이 한가한 듯하여,
텅 비어 유유자적하였다.
​(銅󰜃鐵鉢 掩室杜詞 松老雲閑 曠然自適)
- 임제록 (상당편)

 
늙은 소나무나 한가한 구름과 같이 유유자적한 임제선사의 노년의 모습은, 섭승상의 말대로 ​​"​머물 땐 외로운 학이 소나무 꼭대기에 차가운 날개를 쉬고 있는 듯하고, 떠날 땐 조각구름이 잠깐 세상에 스쳐가듯 한다’는 말 그대로 입니다. 섭승상과 임제선사의 행적을 돌아보며, 모습과 시간이 공한 도리는 삶에서 이렇게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더운 여름 날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여운 2016.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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