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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거대한 뿌리 - <연기>와 <무아>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6.10.22|조회수31 목록 댓글 0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모든 고통을 원인과 조건(인연:因緣)으로 파악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을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연기법은 모든 현상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생성하고 소멸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경전에서는 연기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 <다섯 가지 두려운 원한의 경> 쌍윳따니까야(전재성 역) 12:42 (5-2)​

​연기법은 부처님이 고통의 원인을 물으며 사색한 결과, 스스로 깨달은 진리입니다. 연기법에는 6연기, 8연기, 13연기 등 내적 사색과 성찰의 과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12연기법입니다. 다음은 초기경전 <쌍윳따니까야> 중에서 연기법을 설한 <인연의 쌍윳따(원인과 조건을 주제로 모은 경전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경전입니다.

수행승들이여, 연기((緣起)라는 것은 무엇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고,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소멸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소멸한다.

- <연기의 경> 쌍윳따니까야(전재성 역) 12:1 ​(1-1)

​연기법의 현실적 의미는 우리의 고통(우비고뇌 -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내 것'에 대한 집착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집착은 갈애(愛)에서 일어나고, 다시 이 갈애는 느낌(受)에서 일어나며, 이 느낌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 눈 귀 코 등)이 바깥 경계를 접촉(觸)해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원인과 조건(연기법)을 이해할 때, 생각과 말과 행동과 생계활동(직업) 속에서 '내 것'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팔정도)이 일어납니다. 행복은 이처럼 욕망과 집착에 대한 내적 성찰에서 옵니다. 

12연기를 성찰하면 자연스럽게 두 가지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가라앉고, 행복한 느낌이 일어나며, 사유하는 지성(知性)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새기면,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해 섬세한 관찰을 하게 됩니다. 팔정도의 정정(正定)과 정념(正念)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적 성찰은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규모와 세력을 추구하는 종교는 성찰하는 사람보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신도나 관제 이데올로기를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추종자를 좋아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는 연기법을 성찰하여, 스스로 윤회나 다음 생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또는 이기적 환생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납니다. 또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통해 인간이 정화된다고 주장하는 고행자의 이론도 거부합니다. 부처님은 주문이나 제사를 거부했기 떄문에, 불교에 귀의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바라문들은 주문이나 제사로 보시를 받을 길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들은 부처님과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우물에 흙을 붓거나, 부처님과 제자들을 찾아가 모욕을 주었습니다.

연기법은 세상의 진리입니다. 여래는 단지 이 진리에 눈을 뜬 사람입니다.


"연기(緣起)는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세계는 정해져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한다."

"​여래는 연기법을 올바로 깨닫고 꿰뚫었으며, 올바로 깨닫고 꿰뚫고 나서, 설명하고,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고 한다."

- <조건의 경> 쌍윳따니까야 12:20 (2-10) 

연기법을 깊이 이해하면 무아(無我)의 진리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12연기법 중 <집착(取)>은 <갈애(愛)>에서 일어납니다. 비구 몰리야 팍구나는 부처님에게 '집착하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원인과 조건 속에 <자아>가 따로 존재하는지 물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와 같은 질문은 적당하지 않다. 나는 '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사람이 집착한다.'고 말했다면, 그 질문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로지 '세존이시여, 무엇 때문에 집착이 일어납니까?'하고 물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이와 같다.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난다.'"

- <몰리나 팍구나의 경> 쌍윳따니까야 12:12(2-2)  ​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싸리뿟따(사리불)도 집착과 갈애는 조건의 생성일 뿐, 그 속에 원인을 만드는 '자기(自我)'나  '남(他)'이 없다고 했습니다.

[곳타따] "존자 싸리뿟따여, 집착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까? 집착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 집착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혹은 집착은 스스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싸리뿟따] "벗이여, 곳티따여, ​집착은 스스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집착은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집착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도 아니고, 집착은 스스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닌, ​원인없이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집착은 갈애를 조건으로 생겨납니다. 벗이여, 두 갈대묶음이 서로 의존하여 서 있는 것처럼 갈애를 의존하여 집착이 생겨납니다. (이하 명색 의식 여섯감역 접촉 등에 대해서도 같은 형식으로 대화가 이어집니다)"

- <갈대 묶음의 경> 쌍윳따니까야 12:67(7-7) ​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연기법적으로 관찰한 사람은 원인과 조건이 내가 아니며(非我), 그 속에 자아가 없는(無我) 진실을 깨닫습니다. 나아가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오온(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내가 아니며(非我), 그 속에 내가 없는(無我)' 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멀리 여읨>이 일어납니다. <멀리 여읨>은 몸과 마음을 '나'라고 여겨온 지금까지의 관념이 진실이 아님을 볼 때 일어나는 '실존에서 떨어지는' 체험입니다. '멀리 여읨'이 일어난 사람은 자기를 늘 떨어져 봅니다. '멀리 여읨'은 삶과 죽음을 '내가 아닌 것(非我)'으로 바라보게 되는 개안(開眼)이기도 합니다. 

'멀리 여읨'은 한문으로는 출리(出離) 원리(遠離) 또는 '싫어하여 떠남'의 뜻으로 염리(厭離)라고도 번역합니다. <멀리 여읨>은 <적멸 寂滅(욕망의 불이 꺼진 고요함)>을 가져 옵니다. <무아>와 <멀리여읨>과 <적멸>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초기경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 <늙음의 경>

"참으로 사람의 목숨은 짧으니, 백 살도 못 되어 죽습니다. 아무리 더 산다 해도 결국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으로 그것을 잃게 됩니다. 현명한 님은 이와 같이 알고 ‘내 것’이라는 것에 경도되지 말아야 합니다. ‘내 것’이라는 것에 탐욕을 부리면, 걱정과 슬픔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합니다. 홀로 명상하며 유행하는 수행승이라면, 정신적으로 <멀리 여읨>을 좋아하고, 자신을 존재의 영역(거처)에 들어내지 않는 것이 그에게 어울리는 일입니다. <멀리 여읨>을 배우시오. 이것은 고귀한 님들에게 최상의 일입니다."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 제4 여덟 게송의 품, <늙음의 경> <띳싸 멧떼이야의 경> 일부 발췌 인용

 

나) <서두름의 경>

[질문자] “그대 태양 족의 후예이신 위대한 선인께 <멀리 여읨>과 <적멸>의 경지에 대해서 여쭙니다. 수행승은 어떻게 보아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열반에 듭니까?”  
[세존] “현명한 자라면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희론적 개념의 뿌리를 모두 제거하십시오. 어떠한 갈애가 안에 있더라도 새김을 확립하여 그것들을 제거하도록 공부하십시오. 안으로 뿐만 아니라 밖으로 어떠한 현상이든 잘 알 수 있더라도,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사람에게 그것은 소멸이라 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우월하다.’든가 ‘열등하다.’든가 혹은 ‘동등하다.’라고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받더라도, 자기를 내세우는 허구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승은 안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 <서두름의 경> 숫타니파타 제4 여덟 게송의 품, 제14경   

 

다) <피안에 이르는 길>  

[존자 도따까] “널리 보는 눈을 가진 님, 싸끼야(석가)여, 저는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저로 하여금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세존] “도따까여,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의혹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해탈을 시켜주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대가 으뜸가는 가르침을 안다면, 그대 스스로 거센 물결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 
[존자 도따까] “거룩한 님이여, 자비를 베풀어 제가 알고 싶은 '멀리 여읨의 원리'를 가르쳐주십시오. 저는 마치 허공처럼 평화롭게, 이 세상에서 고요하고 집착 없이 유행하겠습니다.
[세존] “시간적으로나, 위로 아래로 옆으로 가운데로나, 그대가 인식하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을 세상에서의 집착이라 알아서,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지 마십시오."  

- 숫타니파타, 제5품 피안에 이르는 길 중 일부 인용

라) 법구경  
'멀리 여윔'의 맛을 보고,

적정의 맛을 보고,  
진리의 기쁨의 맛을 본 사람은

악을 여의고 고뇌를 여읜다. 

- 법구경(전재성 역) 205 게송  

 

​부처님에게는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 중에도 눈밝은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찟따(짓다라) 장자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장자는 교리에도 이해가 깊었습니다. 다음은 찟따 장자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장자 찟따는 병이 들어 괴로워했는데 아주 중병이었다. 그러자 많은 하늘사람들이 모여와 장자 찟따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장자 찟따는 그들 여러 하늘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그것 역시 무상한 것이고, 그것 역시 불안한 것이고, 그것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장자가 깨어나자 장자 찟따의 친구, 동료, 친지, 혈족들이 장자 찟따에게 물었다. “고귀한 아들이여, 그들 여러 하늘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까?” 장자 찟따가 말했다. “그들은 ‘이 장자 찟따는 계행을 지키고 착하고 건전한 가르침을 지킨다. 만약 그가 미래세에 전륜왕이 되겠다고 서원을 하면, 계행을 지키는 자가 마음에 둔 서원은 청정하기 때문에 성취될 것이다. 정의로운 자에게 바른 결과가 따를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하늘사람들이 모여 와 나에게 ‘장자여, 그대는 서원에 따라 미래세에 전륜왕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것 역시 무상한 것이고, 그것 역시 불안한 것이고, 그것 역시 버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 <간병의 경> 쌍윳따니까야(전재성 역) 41:10(1-10) 요약 (잡아함 21권 17)

찟따 장자처럼 멀리 여읨과 무아의 진리에 투철한 사람은, 제사를 지내거나 주문을 외워 금생의 복을 얻거나 다음 생의 부귀를 약속하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숨어 있는 탐욕과 분노와 무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합니다. <무아>의 진리가 <연기법>에서 얻어진 깨달음이라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아>의 깨달음은 논리적인 추론이나 과학적인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욕망과 집착의 원인을 사유하는 연기법적인 성찰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불교의 거대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연기>와 <무아>의 성격을 다시 사색하며, 오늘 우리의 수행을 돌아봅니다. 

(여운 2016.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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