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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산마루에 걸린 흰구름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6.11.16|조회수46 목록 댓글 0

선정릉(선릉)은 서울 강남 한 복판에 있는 거대한 숲입니다. 이곳에는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무덤인 선릉, 그리고 11대 임금 중종의 무덤인 정릉이 있습니다. 선정릉은 왕가의 무덤이라기보다 자연이 숨 쉬는 곳이자, 시민들의 안식처입니다. 선릉에는 긴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오는 사람도 있고, 건강을 위해 앞만 보고 열심히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나 풀과 다람쥐를 유심히 보는 사람을 보면 반갑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1495년)에 처음 지어진 선정릉은 올림픽공원이나 일산 호수공원처럼 최근에 지은 공원과는 그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11월 중순의 선정릉은 만추(晩秋)의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고요하면서도 적적하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은 아무리 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휘어져 있는 소나무들은 조화와 균형의 극치입니다. 고요하게 서 있는 소나무는 깊은 선정에 잠겨 있습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저절로 숲 속의 침묵에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숲 속의 깊은 침묵을 깨지 못합니다. 이 텅 빈 심연(深淵) 앞에서는 왕릉의 존재도, 봄 여름 가을 겨울도 단지 지나가는 손님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찾는 까닭은 억눌린 마음을 펴기 위해서지만, 잠시 답답한 일상을 푸는 데 그치고 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쳐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쉴 곳을 얻지 못하면, 사고와 판단이 메말라지기 쉽습니다. 옛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살았던 힘으로 명리(名利)에 찌든 삶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자연에는 사사로운 마음이 없습니다. 겨울에 추위가 오고 여름철 해가 뜨거워도 자연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노자(老子)는 사람을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나 정치는 미워하지만, 늙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자연은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도연명의 시(잡시)입니다.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오두막 짓고 사람들 틈에 살아도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수레나 말 오가는 소리가 없다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그대여, 어찌 그럴 수 있소?' 하고 묻는다면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사는 곳은 절로 외지게 된다고 말하겠소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며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보니,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해 저물어 색깔이 어여쁘고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나는 새는 나란히 둥지로 돌아가는구려.
此間有眞意 차간유진의     이 가운데 참다운 뜻이 있으니
欲辯已忘言 욕변이망언     설명하려고 해도 말을 잊었소. 

도연명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마음이 명리에서 멀리 떠나 마치 외진 곳에서 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세속적인 사람은 시골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명성이 세상에 들리길 바라고, 문 앞에 말이나 수레 소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명리에 눈이 어두우면 몸속의 화기(和氣)가 사라집니다.

도연명은 늦은 오후 국화를 따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남산의 풍경을 시로 남겼습니다. 마침 해가 저물 때라 산 빛은 석양으로 곱게 물들고, 새는 짝을 지어 한가롭게 둥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무심하게 자기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자연을 보며, 도연명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자연을 만나며 얻어지는 기쁨(황홀 恍惚)은 도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노자는 도덕경 14장에서 황홀을 통해 자연의 도로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자연계에는 생·멸(生滅) 유·무(有無) 왕·복(往復) 음·양(陰陽) 등 대립적인 요소가 활동하지만, 만물은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며 변화합니다. 노자는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안고 있지만, 그 가운데 보이지 않는 기운(충기 沖氣)이 조화를 하고 있다(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萬物 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 도덕경 42장)'고 했습니다. 만물의 속을 본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낮춥니다. 고대의 왕들이 자신을 '고아 과부 머슴(고 과 불곡 孤 寡 不穀)으로 낮추어 불렀던 것은 오직 도에 의지하여 나라를 다스려, 함부로 자연의 조화를 깨지 않기 위해서 였습니다. 상과 벌 즉, 벼슬이나 형벌로 정치를 하면 세상에 흉한 일이 일어납니다. 노자는 이것으로 자기 가르침의 근본(敎父)으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도홍경(452-536)은 중국 남조(南朝)의 양(梁)나라 시대, 의학자이면서도 유교와 불교 및 도가사상에 깊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임금(무제)이 여러 번 불러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무제는 도홍경에게 산속에 무엇이 있기에 내려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도홍경은 임금에게 시를 지어 보냈습니다.


山中何所有 산중하소유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嶺上多白雲 영상다백운   산마루에 흰 구름이 많습니다.
只可自怡悅 지가자이열   다만 나 홀로 이 광경을 즐길 뿐,
不堪持贈君 불감지증군   임금님께 갖다 드릴 수는 없답니다. 


왕궁에는 사람도 많고 재물도 많지만, 도홍경이 지내는 산속에는 산마루에 흰 구름만 무성하게 걸려있을 뿐입니다. 사람과 재물은 보내줄 수 있지만, 흰구름은 아무리 많아도 갖다 줄 수 없습니다. 노자는, 만약 가져다 바칠 수 있는 것이 도(道)라면, 사람들은 다투어 자기 임금에게 바칠 것이라고 했습니다(장자 천운편). 도는 누구도 신하처럼 제마음대로 부릴 수 없습니다. 산마루에 걸린 흰 구름을 보며 홀로 기쁨에 젖어있는 도홍경의 지성이 부럽습니다.

 

자연의 변화를 본 사람은 문득 자기를 돌아보게 됩니다. 바깥을 보는 외관(外觀)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내관(內觀)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이 주는 큰 축복입니다. 자연은 여느 스승처럼 요란한 설법을 하거나 마음을 무겁게 누르지 않고도,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장자(莊子)는 참다운 성인(聖人)은 무심한 까닭에 말없이 곁에 있기만 해도 사람들이 고요해진다고 했습니다. 선릉은 지금 가을빛이 한창입니다. 조금씩 말라가는 단풍잎은 무심하게 태고(太古)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운 2016.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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