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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화두

유마거사의 작은 방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6.12.19|조회수87 목록 댓글 0

유마(유마힐) 거사는 유마힐소설경(Vimalakirti Sutra: 유마거사가 설법한 경)의 주인공입니다. 유마거사는 바이살리(비야리) 성에 사는 리차비족 장자입니다. 그는 부인과 자식을 둔 재가불자입니다. 재가자는 가정을 꾸리고 생업에 종사해야 하니, 출가자에 비해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이 열악합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재가자의 현실을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행과 보살행의 방편으로 이용합니다. 유마경 서두에는 보살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 구절은 곧 재가불자 유마거사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 바이살리의 암라팔리 숲 터에서 8천 명의 비구들과 함께 계실 때의 일이었다. 그 자리에는 3만 2천 명의 보살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로서 세상이 다 아는 보살대사(菩薩大士)였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이들로서 법(法)이라 불리는 성(城)의 수호자가 되어 그것을 잘 지켰으며, 대사자후(大獅子吼)의 주인공으로서 그 소리는 사방을 두드렸다. 청하지 않는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좋은 벗이 되어 주었으며, 삼보(불법승)의 맥을 그르치지 않는 이들로서 악마와 적군들을 엄단하고 반론으로 덤벼드는 자들을 정복하였다.

- <유마경(박용길 역)> 민족사 (일부 요약)


무엇보다 우리의 눈을 끄는 구절은 보살은 "청하지 않는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구마라즙은 중인불청 우이안지(衆人不請 友而安之: 사람들이 부르지 않아도 벗이 되어 편안하게 해준다)로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은 참으로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보살행의 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유마거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게송입니다.


견수공사자 (見須供事者) :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보면,
현위작동복 (現爲作僮僕) : 망설이지 않고 심부름꾼과 하인이 된다.
기열가기의 (旣悅可其意) : 그 사람의 마음이 즐거워지면,
내발이도심 (乃發以道心) : 마침내 도심을 일으키게 한다.
- <유마경(구마라즙 역)> 불도품(佛道品)

 

어느 날 유마거사는 방편 삼아 병을 핑계로 누웠습니다. 사람들이 문병하러 오자 유마거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렸습니다. 부처님도 소식을 듣고는 문수보살에게 문병을 가도록 했습니다. 유마거사는 이윽고 문수보살이 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방을 정리했습니다. 

그리하여 8천의 보살, 5백의 성문, 제석천, 범천, 사천왕, 수천 수백의 천신들은 법을 듣고자 하는 일념으로 문수의 뒤를 쫓았으며, 행렬의 맨 앞에 선 문수는 바이살리 시내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 무렵 유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수보살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있구나. 그렇다면 신통력으로 내가 있는 이 방을 텅 비워놓아 볼까.’

그가 신통력으로 방안을 말끔히 치우자, 그곳에는 거사가 병을 가장하고 누워 있던 침상 외에 그를 시중들고 있던 사람을 비롯하여 탁자와 의자와 방석까지 모두 눈앞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유마의 저택에 도착한 문수는 곧 거사를 문병하기 위해 그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방안에는 웬일인지 오직 거사가 누워 있는 침상 외에는 시중드는 사람도 탁자나 의자, 방석까지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 <유마경(박용길 역)> 제5장 문수보살의 병문안(문수사리문질품 文殊師利問病品)  

유마거사의 방을 흔히 방장(方丈)이라고 부릅니다. 방장은 길이가 사방 10자(尺)이니, 지금으로 말하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약 3.6 미터인 아주 작은 방입니다. 오늘날 조실스님을 모신 방을 방장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이처럼 작은 유마거사의 방에 문수보살과 그를 따르는 8천 명의 보살과 5백 명의 스님이 모두 장애 없이 들어갔으니, 참으로 만법을 꿈과 그림자와 같이 실답지 않게 보는 대승불교의 공(空) 사상을 극진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마거사가 머무르는 작은 방에는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납니다. 유마의 작은 방을 지키는 천녀(天女)는 사리불 장로에게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덕(사리불)이시여, 이 방에는 평소에 볼 수 없는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일들이 언제나 나타납니다. 먼저 이 방에는 금빛 찬란한 광명이 끊임없이 비치어 밤낮의 구별이 없으며 해와 달도 소용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방 밖에 있든 방 안에 있든 번뇌에 시달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의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안에는 언제나 제석천과 범천과 사천왕 및 불국토의 보살들이 운집하여 물러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는 언제나 법의 음성이 끊이지 않으니 곧 육바라밀과 불퇴전의 법륜을 중심으로 하는 설법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의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는 언제나 북소리와 노래와 음악이 사람들과 신들에 의해 펼쳐지며 그로부터는 또한 무량한 불법으로 교화하는 음성이 들여오기도 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는 언제나 온갖 보석이 가득 찬 네 개의 큰 상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위신력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아무리 많이 나누어 주어도 결코 바닥이 드러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는 언제나 저 고매하신 분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석가족의 현자이신 석가여래를 비롯하여 무변광여래, 부동여래, 보길상여래, 보염여래, 보월여래, 보엄여래, 난승여래, 일체의성취여래, 다보여래, 사자후여래, 사자성여래 같은 시방의 무량한 여래들이 내려와 여래의 비밀이라는 법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일러주고 나서 다시 돌아가고는 합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이 방에는 언제나 모든 신들이 머무는 궁전과 광명과 불국토의 공덕에 의한 일체의 광명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 <유마경(박용길 역)> 제7장 중생에 대한 관찰(관중생품 觀衆生品)


유마거사의 작은 방에는 금빛으로 빛나기 때문에 해와 달의 광명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방에 한 번 들어오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번뇌에 시달리는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한 물건도 얻을 바 없는 공성(空性)의 참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유마경은 중생이 성숙해지는 길은 오직 모든 존재의 근본이 공성임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유마거사의 작은 방에는 북소리와 노래와 음악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 소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노래와 음악은 일찍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율로 금지했습니다. 출가자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다섯 번째 불가사의는 현실에 맞는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불법을 널리 펴려는 대승불교의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율을 강조하는 상좌부나 출가자의 입장에서 보면, 노래와 음악과 같은 방편은 곧 비도(非道)입니다. 유마경이나 대승경전에 으레 방편품을 따로 세워 방편의 의미를 설명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방편은 대중을 해탈과 깨달음으로 이끌 때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불교처럼 방편을 기복의 수단으로 쓴다면 이미 대승불교의 방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방편은 불법과 가까이 할 수 없는, 늙고 병들고 가난과 신체적 장애 때문에 소외받는 사람들도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어주는 자비입니다. (전통적인 계율에서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불구자는 출가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유마와 문수는 진정한 불도에 대해 법담을 나누었습니다.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佛道)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을 간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가 아닌 길을 간다는 것입니까?"
유마힐이 답하였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도 보배를 낳는 손으로서 공덕이 다하는 일이 없으며, 불구자 사이에 끼여도 온갖 상호를 갖추어 자신의 몸을 장엄하고,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도 부처가 될 소질을 가진 무리에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몸이 쇠약하고 추하고 비참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도 나라연(nryaa)과 같이 힘센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이 부러워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늙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 끼여도 영원히 병의 근원을 끊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합니다. 재물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항상 무상을 관하여 실제로 탐내는 것이 없으며, 아내와 첩과 채녀가 있는 것을 보여 주지만 항상 5욕의 진흙탕에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이같이 도 아닌 길[非道]을 행해 갈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도에 통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유마경 제8. 불도품(佛道品) 일부 발췌


유마거사의 작은 방에서 일어나는 여섯 번째 불가사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보시하는 일입니다. 진정한 자비가 살아있는 곳에는 재물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유마거사는 거지들에게 재물을 보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주가 만일 평등한 마음으로 가장 천한 거지 한 사람에게 보시하되 부처님께 보시하는 것과 같이 하고, '나는 시주다, 너는 거지다' 하는 분별을 내지 아니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대비심을 일으키며, 미래의 과보를 구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일러 완전한 법보시라고 합니다."  

그때에 성안에 사는 가장 천한 거지도 유마거사의 법문을 듣고 나서, 깨달음을 향한 마음(아뇩다라삼막삼보리)을 내었습니다.  

- <유마경> 보살품 선덕편

 

유마거사는 거지들에게 물질적인 보시를 하면서도 그 안에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나아가 주는 물건'에 대한 교만과 집착이 없는 무주상(無住相)보시의 도리를 설합니다. 무주상보시는 그 뜻이 매우 깊습니다. 보시를 받는 가난한 사람은 두려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고, 보시하는 사람은 교만과 기복적인 이기심에서 벗어납니다. 주는 물건에 대한 집착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주상보시는 물질적인 보시를 통해, 보시를 주고받는 사람이 모두 무아(無我)와 공성을 도리를 깨닫게 합니다. 보시에 이처럼 가이 없는 깨달음을 담아내는 대승불교의 보시는 보살행의 정수이며, 참으로 털구멍에 수미산을 담는 소식입니다.


열자(列子 황제편)에는 바닷가에 사는 한 아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는 늘 바닷가에 나가 갈매기와 함께 놀았습니다. 갈매기는 아이의 머리와 어깨에 내려 앉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 아비가 병이 들자, 의사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약으로 쓰기 위해 갈매기를 잡아오라고 합니다. 바닷가에 간 아이는 갈매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평소와 달리 한 마리도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보시하는 사람이 속으로 명예나 돈에 대한 야망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은 이내 눈치를 챕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복지의 대상이나 포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런 보시의 현장에는 주고받는 사람 사이에 위선과 기만이 가득합니다. 위선적인 보시는 받는 사람의 분노를 삽니다. 진정으로 무주상보시가 되기 위해서는 주는 사람이 공명심과 기복적 유혹을 참아야 합니다. 특히 미래의 과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마침내 무심한 보시에 이르게 됩니다. 받는 사람이 흔연히 깨달음에 마음을 내는 보시는 오직 무심한 보시입니다. 무심한 보시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그리고 주는 물건이 모두 텅 비어있는 도리(삼륜공적 三輪空寂)에서 나옵니다. 


유마거사의 방은 비록 작지만, 일체 중생들의 해탈과 깨달음을 위해 걸림 없이 방편을 굴리는 대승보살의 행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유마거사의 방에 있는 보석상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신통력은 오직 공(空)과 무아(無我)를 곧은 마음으로 행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유마경은 유마거사와 같은 재가보살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운 2016.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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