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의 시인 왕유(王維 699-759)는 시와 그림에 뛰어났습니다. 왕유의 시에는 불교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있어 후세 사람들은 '시불(詩佛)’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개조(開祖)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왕유의 작품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왕유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독실한 불자가 되었습니다. 왕유의 어머니 최씨는 보적선사에게서 선(禪)을 배웠습니다. 보적은 5조 홍인대사의 법을 이은 신수선사의 제자입니다. 어머니는 평생동안 비단옷을 걸치지 않았고, 선을 닦았으며 부귀에 초연했습니다. 다음은 최씨의 공부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731년 왕유가 진사에 합격하고 태악승(太樂丞)이 되어 그 기념으로 어머니 최씨에게 새 옷을 한 벌 지어드렸다. 그때 최씨는 말했다.
“나는 옷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여래의 집에 살면서 인욕의 옷을 입고 있는데 다시 무슨 새 옷이 필요하겠느냐.”
그러나 왕유는 두 번 세 번 새 옷을 입길 권했다. 모처럼 아들이 입신출세하여 그 기념으로 지어온 옷인데 한 번 입어나 보시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나를 욕망의 세계로 이끌려 하지 말아라.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은 욕망만을 낳을 뿐이다. 나는 이미 아름답고 추함의 세계를 벗어났거니, 이 입고 있는 옷으로도 남부러울 게 없구나.”
- 월간 불광 221호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어머니 최씨(崔氏)> 동봉스님의 글
왕유는 스스로 호를 마힐(摩詰)이라고 지었습니다. '마힐'은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유마힐)거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왕유가 얼마나 유마경에 심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왕유 또한 당대 최고의 선승인 마조와 신회에게서 선을 배웠습니다.
755년 안사의 난이 일어나고, 왕유가 57세가 되는 756년 장안(長安)이 점령되자 왕유는 반란군에 사로잡혀 낙양으로 끌려갔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벼슬을 받았지만, 탐탁지 않게 여기고 종남산(終南山) 기슭에 별장을 짓고는 틈틈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난이 평정된 뒤, 왕유는 반란군에게 벼슬을 받았다는 이유로 다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다음 <종남별업>은 왕유가 종남산에 지내는 동안 지은 시입니다.
종남별업(終南別業)
- 종남산의 특별한 일
나이 들어 자못 도를 좋아하게 되어
늘그막에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다.
흥이 나면 으레 홀로 나가 다니는데,
비할 데 없이 기쁜 이 일을 누가 알리오.
길을 거닐다 물가에 이르면,
앉아서 때마침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고,
우연히 산에 사는 늙은이를 만나면,
웃고 떠드느라 돌아갈 때를 잊는다.
(여운 역)
中歲頗好道 (중세파호도) 晩家南山陲 (만가남산수)
興來每獨往 (흥래매독왕) 勝事空自知 (승사공자지)
行到水窮處 (행도수궁처) 坐看雲起時 (좌간운기시)
偶然値林叟 (우연치림수) 談笑無還期 (담소무환기)
위 셋째 행의 行到水窮處 (행도수궁처) 坐看雲起時 (좌간운기시) - 길을 거닐다 물가에 이르면, 앉아서 때마침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본다 - 이 구절은 실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많은 시인들이 이 구절을 즐겨 입에 올렸으며, 화가들은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선(禪)적인 의미가 깊어 예부터 선승들 또한 즐겨 인용했습니다.
남송 화가 마린의 <좌간운기(坐看雲起)>
마지막으로 왕유의 시 가운데 특히 선(禪)의 도리를 보여주는 시를 올립니다.
산새가 골짜기에서 우짖다
- 조명간(鳥鳴澗)
사람은 한가하고 계수나무 꽃은 떨어지며,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텅 비었다.
달이 뜨자 산새가 놀랐는지,
골짜기 속에서 때때로 우짖는 소리를 낸다.
人閑桂花落(인한계화락)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
時鳴春澗中(시명춘간중)
왕유가 은자를 만나 담소를 나누는 그림
사람은 일 없이 한가하게 앉아있고, 마당의 계수나무에서는 꽃이 소리없이 떨어집니다. 밤은 고요하고 산은 인적이 드물어 만상이 텅 비어 있는 듯합니다. 시는 어느 봄날 늦은 밤까지 한가하게 앉아있는 시인과 적막한 산의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이윽고 달이 뜨자 골짜기 사이에서 이따금 새 우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이 뜨자 산새가 놀랐는지,
골짜기 속에서 때때로 우짖는 소리를 낸다.
이 마지막 두 구절을 읽으며 문득 왕유의 일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구절에는 관직생활에 풍파를 겪으면서도 수행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 왕유의 속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달은 무심하게 뜨건만, 새들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소리를 냅니다. 세속에 살면서 온갖 재물과 명예의 유혹을 이겨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주위의 질투나 시기, 모함에 초연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왕유의 시 <조명간(鳥鳴澗)>을 한 구절씩 새기다 보면 문득 그림이 보이고, 그림이 보이는가 하면 어느새 사람과 나무, 새와 달이 뒤로 물러가 버립니다. 존재의 본성에는 나와 남이 없으며 오직 조화와 평화가 흐르고 있습니다. 마힐거사 왕유는 세상에 대한 관용과 무심한 마음의 평화를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운 2017.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