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수요일(4월 1일) [법과 등불] 모임에서는 <싸비야의 경>을 공부합니다.
이번이 세번 째로 마지막 시간입니다. 다음 모임(4월 15일)에서는 <쎌라의 경>을 공부합니다.
싸비야는 추종자를 가진 노련한 사상가이자 유행자입니다. 그는 당시의 큰 스승
여섯 명을 찾아 진리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싸비야의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해 큰 스승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냉담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싸비야에게 모욕을 주기도 했습니다.
싸비야의 한탄을 화두로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싸비야의 질문을 탐구하였습니다.
싸비야의 질문은 '수행을 통해 어떻게 선(도덕성)을 성취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는 수행에 있어서 '얻어야 할 선(善)과 버려야 할 악(惡)'은 과연 무엇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싸비야의 질문에 왜 당시 큰 스승들은 한결같이 싸비야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 모욕을 퍼부었을까요?
싸비야가 질문을 던진 당시 여섯 스승의 사상을 크게 나누어 보면 세 가지입니다.
유물론과 결정론과 회의론이 그것입니다. 물론 고행을 주장하는 니간타 나타풋타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종교의 지도자인 바라문들이 인간의 영혼을 내세워 제사를 지내주고
이익과 명예를 취하는 위선을 혐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새로운 진보적 스승들은
선악을 거부했으며, 특히 유물론을 주장하는 스승들은 영혼(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영혼의 존재를 가정한 바라문들의 선과 악, 윤회를 모두 거부하였습니다.
싸비야는 바로 이런 새로운 사상가들에게 선과 악, 고귀한 행위에 이르는 길을 물었으니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하였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지난 시간의 토론을 통해 오늘 날에도 이와 같은 사조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였습니다.
세상의 본질에 깊이 통달했거나(유물론), 미래를 잘 알더라도(결정론),
그리고 아무리 논리적인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하더라도(회의론),
탐욕과 분노와 폭력이 일어나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성찰과 멈춤이 없이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의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번 수요일 공부할 <싸비야의 경>에서 우리는 부처님이 어떻게 싸비야의 질문에
답변했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늙은 유행자 싸비야는 젊은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석가족 청년(부처님)을 찬탄합니다.
이 찬탄은 단순히 부처님을 칭찬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적 언사가 아니라,
평생 유행하며 선(善)을 추구한 싸비야의 찬탄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 찬탄속에는 당시 알려진 스승들과 다른, 부처님 고따마의 가르침의 특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싸비야의 질문에 부처님이 답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유물론이나 결정론과 회의론을 주장하는 스승들이 인간의 마음을 경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것에 비해, 부처님은 선과 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선악이 일어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주장합니다.
38.
[싸비야]
“무엇을 성취한 사람을 학식있는 님이라고 부릅니까?
무엇으로 고귀한 님이 됩니까?
어떻게 행위가 바른 님이 됩니까?
어떻게 유행하는 님이라 이름 붙여집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39.
[세존]
“싸비야여, 모든 번뇌와 감각적인 집착을 끊고,
슬기로운 님은 모태에 들지 않습니다.
세 가지 지각(감각적 쾌락, 분노, 폭력)을 제거하고 진흙(번뇌)을 털어 버리고,
허구에 이르지 않으면, 그를 고귀한 님이라 부릅니다.
41.
이 세상에서 훌륭한 행위를 성취하고 언제나 착하고 건전하여
가르침을 알고 있으며,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여 성냄이 없는 자, 그를 행위가 바른 님이라 부릅니다.
싸비야는 부처님의 답변을 듣고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이 찬탄 속에는 불교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리고 불교적 수행이 무엇인지 오늘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싸비야]
"사변적 논쟁에 의존하고 일반적인 명칭에 의존하고
개념적 지각에 의존하는 수행자들(당시 사상가들)의
예순 세 가지 이설을 제압하고,
광대한 지혜를 갖춘 님께서는 거센 흐름을 건넜습니다.
45.
당신은 괴로움의 종국에 도달한 님, 피안에 이른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입니다.
당신은 번뇌를 부순 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찬란히 빛나고, 생각이 깊고, 풍요로운 지혜를 지닌
괴로움을 종식시키는 님이시여,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46.
당신은 저에게 의심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 주셨으니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성자시여, 해탈의 길을 성취한 님이시여,
황무지가 없는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온화하십니다.
52.
당신은 집착을 넘어섰고, 모든 번뇌를 부수었습니다.
당신은 집착 없는 사자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버리신 분입니다.
(숫타니파타, 큰 법문의 품, <싸비야의 경>, 전재성 역)
(2015. 3. 30, 如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