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법과 등불]

6월 3일 [법과 등불]모임 - 숫타니파타<바쎗타의 경>에 대한 사색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6.01|조회수37 목록 댓글 0

지난 5월 20일 [법과 등불] 모임에서는 <바쎗타의 경>을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두 청년 바라문 학자들이 부처님을 찾은 배경과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함께 토론했습니다.

 

부처님 당시 바라문들은 제사와 주문을 주관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권위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바라문들은

자기들의 종교적 권위를 배타적으로 유지 세습하기 위해 바라문의 가문의 조건을

태생적으로 엄격히 강화하였습니다. 7대 조상까지 족보를 따져 다른 종족과의

결합을 막고 소위 순혈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라문들의 타락과 더불어 바라문 종성에 대한 권위는 흔들렸습니다.

마침내 두 젊은 바라문 <바라드와자>와 <바쎗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훌륭한 명성을 얻고 있는 수행자 고따마(부처님)를 찾아 바라문의

올바른 의미와 조건을 묻기로 합니다.

경전의 내용을 읽어 볼 때, 바라드와자는 보수적이며, 당시 바라문을 비판하는

새로운 수행자의 대열에 있는 부처님을 찾아가자고 주장하는 바쎗타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때 주문과 제사를 통해 복을 구하고

위로를 얻지만, 그러나 마음 속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더 큰 제사나 더 강한 주문을 찾게 됩니다.

결국 주문과 제사를 관장하는 바라문에게 더욱 의지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제사를 지내고 주문을 외울수록 두려움은 깊어지고 속박은 더 견고해집니다. 

 

부처님은 경전 곳곳에서 바라문의 허위와 위선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탐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해탈이 곧 진정한 바라문의 길이라고 설합니다.

두 젊은 바라문에게 설한 부처님의 설법은 당시 바라문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읽을 때 그 뜻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 역시 두려움을 안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종교는 어떤 가르침을 펴야할까요?

마음의 위안만을 주는 종교는 현실도피에 다름 없으며,

단지 미래의 희망만을 약속하는 종교라면 언젠가는 자신을 변명해야 합니다.

<바쎗타의 경>에 나오는 부처님의 법문은 두려움에 갇혀 있는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성찰의 화두를 던져 줍니다. 

다음은 6월 3일 공부할 경전 내용입니다.

**********************************************************************

34.
나는 출생과 가계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매어 있다면, ‘존자여’라고 불리는 자일 뿐입니다.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를 나는 바라문이라고 부릅니다.
35.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집착에 묶여있지 않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36.
가죽 끈과 가죽 줄을 족쇄와 고삐와 함께 끊어 버리고 빗장을 밀어 올린

깨달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37.
비난이나 폭력이나 구속을 성냄 없이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있고

용맹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38.
분노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며, 계행을 지키고 파도를 일으키지 않고

잘 다스려진 궁극의 몸에 이른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39.
연꽃잎의 이슬처럼, 바늘 끝의 겨자씨처럼, 감각적 쾌락에

더럽혀지지 않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0.
이 세상에서 자기의 괴로움이 소멸된 것을 알고, 짐을 내려놓고

장애가 없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1.
지혜가 깊고 총명하며, 바른 길과 삿된 길을 잘 알아,

최상의 이익을 성취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2.
집 있는 자건 집 없는 자건, 누구하고도 멀리하며, 집 없이 유행하며

욕망을 여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3.
동물이건 식물이건 어떠한 뭇삶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한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 않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4.
적의 있는 자들 가운데 적의가 없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 가운데 평화롭고,

집착하는 자들 가운데 집착을 여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5.
바늘 끝에서 겨자씨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탐욕과 성냄 뿐만 아니라

자만과 거짓이 떨어진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6.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의미 있고, 진실한 말을 하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7.
이 세상에서 길거나, 짧거나, 아주 작거나 크고 거칠거나, 아름답거나 추한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않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8.
이 세상이나 저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바램이 없어, 욕망을 여의고

속박 없이 사는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49.
무릇 집착하는 바가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 없이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0.
세상의 공덕이나 악학 행위 어느 것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근심 없고

티끌 없고 청정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1.
구름을 벗어난 달이 깨끗하듯, 청정하고 오염이 없어 환락과 윤회를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2.
이 진흙탕 길과 험로를 지나고 윤회와 미혹을 넘어 피안에 이르러, 선정에 들어

동요 없이 의혹 없이 집착 없이 고요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3.
이 세상의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유행하며, 욕망과 윤회를 버린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4.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유행하며 갈애와 윤회를 버린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5.
인간의 멍에를 버리고 천상의 멍에도 벗어나 모든 굴레를 벗어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6.
쾌락과 불쾌를 버리고, 청량하여 집착 없이 온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7.
뭇삶의 죽음과 태어남을 모두 알고, 집착 없이 바른 길로 잘 가신 님, 

깨달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8.
신들도 건달바들도 인간도 그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님, 번뇌를 부수어 버린

거룩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59.
앞에도 뒤에도 중간에도 어떠한 것도 없어, 아무 것도 없는 집착을 여읜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60.
황소처럼 늠름하고 기품 있는 영웅, 위대한 선인, 승리자, 동요 없는 님,

목욕재계한 님, 깨달은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61.
전생의 삶을 알고, 하늘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을 부수어 버린 님,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릅니다.

 

<숫타니파타>, 큰 법문의 품, <바쎗타의 경> 전재성 역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