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왕궁에서는 왕자가 태어나면 앞날을 내다보는 도사를 불렀습니다. 아기의 미래를 점치기 위해서이니, 장차 아기가 자라 나라의 큰 기둥이 되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꼭 왕이 아니더라도 성인이 태어날 때는 예언자들이 스스로 찾아 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찾았다는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도 소문을 들은 선인 아씨따가 찾아 왔습니다. 아기를 본 아씨따 선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쑷도다나왕이 까닭을 묻자 아씨따는 아기의 미래에 불길한 징조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며, 이 아기가 장차 세상을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릴 부처님이 될 터인데, 정작 자신은 그 때가 되면 죽고 없어서 법문을 들을 수 없어서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왕궁을 나선 선인 아씨따는 조카 날라까를 불러 싯다르타의 탄생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아기가 장차 자라서 깨달음을 얻으면 찾아가 가르침을 묻고, 그 밑에서 출가하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이윽고 세월이 흘러 날라까는 깨달은 분이 세상에 출현했다는 소문을 듣습니다. 날라까는 부처님을 찾아가 진리가 무엇인지,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7월 15일 우리가 공부할 숫타니파타, 큰 법문의 품, 제11 <날라까의 경>은 이렇게 출발합니다.
<날라까의 경>은 경의 서두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부처님이 태어났을 때 아기의 미래를 알아본 아씨따 선인이 등장하고, 그 선인의 조카가 다시 소문을 듣고 부처님을 찾는 이야기로 경전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날라까의 경>은 2대에 걸쳐 직접 부처님을 만나 직접 보고 들은 법문을 전하는 경전입니다.
저는 <날라까의 경>을 읽으면서 첫 머리에 아씨따와 날라까가 등장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아씨따와 날라까는 최초로 부처님을 알아보고, 긴 세월을 부처님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 두 사람이 전하는 <날라까의 경>은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도, 부처님의 탄생과 깨달음을 얻은 이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하는 경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날라까의 경>을 후대에 전하는 전승자의 뜻이 아닌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려고 하는 노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의 본 가르침보다 지역마다 발전한 교리나 수행의 형태를 강조하는 일이 흔합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보다, 부처님에 대한 자기 또는 자기문파의 수행을 강조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신의 수행을 강조하는 일이 그르다고 할 수 없지만, 부처님의 본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고 자신의 수행만 강조하면 자칫 방향을 잃고 헤매기 쉽습니다.
가지가 서로 얽힐 때, 뿌리를 알아야 나무를 상하지 않고 가지를 솎아 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불교의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경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결같이 숫타니파타가 경전 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에 성립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날라까의 경>은 2,500여년이 지난 오늘, 부처님의 가르침의 원형을 찾으려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날라까의 경>에서 만나는 부처님의 법문은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 흡사 부처님 앞에서 직접 법문을 듣는 듯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변을 넘어선, 홀로 지내며 겸손과 침묵으로 살아가는 한 꿋꿋한 수행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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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날라까] “아씨따가 알려 준 말을 잘 듣고 찾아왔습니다. 고따마시여, 모든 현상의 피안에 도달하신 바로 당신께 묻겠습니다. 저는 집 없는 삶을 찾아 탁발의 삶을 추구하오니, 성자시여, 성자들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제가 여쭈오니 말씀해 주십시오.”
23.
[세존] “그대에게 성자들의 삶에 관해 알려 주겠소. 그것은 성취하기 어렵고 도달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주겠으니, 견고하게 새기십시오.
24.
마을에서 거친 욕을 먹든지 예배를 받든지 한결 같은 태도로 대하고, 정신의 혼란을 수습하여 고요히 하고, 교만을 떨쳐버리고 유행하십시오.
26.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에 대해 적대하지 말고, 애착하지도 마십시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들도 그렇고, 그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그러하니, 스스로 자신과 비교하여 그들을 죽여서도 죽이게 해서도 안 됩니다.
29.
배를 가득 채우지 말고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탐욕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욕망이 없어지고 버려져서, 욕망을 여읜 것이 적멸입니다.
30.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숲 속의 빈터에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홀로 앉아 명상을 닦고 수행자로서의 수행을 배우십시오. 홀로 있는데서 기쁨을 찾으십시오. 홀로 있는 것이 해탈의 길이라 불립니다.
42.
작은 여울들은 소리를 내며 흐르지만,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릅니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님은 가득 찬 연목과 같습니다.
- 숫타니파타, 큰 법문의 품, 제11 <날라까의 경>, 전재성 역 (일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