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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등불]

8월 19일(수) [법과 등불] 모임 -<두 가지 관찰의 경>의 사색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8.17|조회수41 목록 댓글 0

8월 첫째 수요일(5일)은 여름휴가로 쉬었습니다.

해서 오는 수요일(19일) <법과 등불> 공부모임을 갖습니다.

이번 모임에 공부할 경전은 <두 가지 관찰의 경>입니다. 이 경은 숫타니파타

<큰 법문의 품>의 마지막 경전입니다. 그래서 <큰 법문의 품>을 맺는 경답게

가장 심오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두 가지 관찰은 인간의 고통을 결과와 원인으로 보는 관찰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연기법(緣起法)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연기법은 현실의 고통을 발견하고, 그 고통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탐구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관찰은 만물의 과거와 미래의 운명을

결정하는 영원한 존재를 부정합니다. 아울러 원인과 조건 자체를 부정하는 허무론이나

우연을 거부하는 사상입니다. 

 

부처님은 원인과 조건을 분석해나가는 연기법적인 사유를 하면서 스스로 앎과 봄(知見)이

일어났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연기법을 부처님이 스스로 깨달은 진리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연기법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

 

위에서 말하는 ‘이것’은 원인을 뜻하고, ‘저것’은 그 결과를 의미합니다.

이 연기법적인 관찰은 고통의 원인을 마음속에서 찾아나가는 성찰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연기법적인 성찰은 자신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서로 미워하다가 몽둥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분란이 일어났을 때, 싸움의 원인을

연기법적으로 성찰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미움이 있기 때문에 싸움이 있고,
미움이 일어나면, 싸움이 일어난다.
미움이 없으면 싸움이 없고,
미움이 없어지면, 싸움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미움이 폭력을 낳는 것을 보고, 폭력이 고통이며 재난이며 위험인 것을 이해하면,

미움을 버립니다. 미움을 버리면 폭력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즉각적인 실천이 일어나는

불교적 지성의 심오함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탐욕 분노 미움 등 여러 욕망과 집착의

소멸을 경험하고, ‘욕망과 집착은 소멸된다.’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관찰의 경>에는 무려 16가지의 관찰의 실례가 나옵니다. 이처럼 <두 가지 관찰의 경>은

부처님의 풍부하고 심오한 연기법적인 사유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경전입니다. 

다음은 <두 가지 관찰의 경>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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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는 보름날의 포살일에 수행승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바깥의 한가한 곳에 앉아 계셨다.

세존께서는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수행승들을 돌아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고귀하여 세속을 떠나며,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착하고 건전한 가르침이 있는데,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고귀하여 세속을 떠나며,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착하고 건전한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그대들에게 묻는 자들이 있거든, 수행승들이여, 그들에게 이와 같이

‘두 가지 원리를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서’라고 말하라.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하는 것이 관찰의 한 원리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하는 것이

관찰의 두 번째 원리이다.'라고 대답하라.

수행승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 관찰의 원리에 올바로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는 수행승에게는

두 가지 과보 중에서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현세에서 최상의 지혜를 증득한다든가,

집착이 남아있더라도 하느님 세계에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님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서 존귀한 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는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세존] “괴로움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또한 괴로움의 발생을 모르며,

괴로움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그쳐버린 상태도,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의한 해탈뿐만 아니라, 지혜에 의한 해탈도 얻지 못한다.

윤회를 끝낼 수가 없는 그들은 참으로 나고 늙음을 받는다.
괴로움을 분명히 알고, 또한 괴로움의 발생을 분명히 알며, 괴로움이 모든 면에서

남김없이 그쳐버린 상태도,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의한 해탈뿐만 아니라, 지혜에 의한 해탈도 구현한다.

윤회를 끝내 버릴 수가 있는 그들은 참으로 나고 늙음을 받지 않는다.”

 

(숫타니파타 <두 가지 관찰의 경> 전재성 역,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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