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법과 등불]

[법과 등불] 10월 21일 모임 - <빠수라에 대한 설법의 경>등 제8, 9, 10경 전문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10.14|조회수25 목록 댓글 0

8. 빠수라에 대한 설법의 경

[세존]

“그들은 ‘이것만이 청정하다.’고 고집하며, ‘다른 가르침은 청정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집착하는 것만이 아름답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진리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토론을 좋아하여 집회에 뛰어들어 서로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여기며,

칭찬을 받기 위해 자신을 착하고 건전한 자라고 하면서, 다른 전제 위에 기초해서 논쟁을 일삼습니다.

집회에서 논쟁에 참가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패배하면 수치스럽게 여기고,

공격할 것을 찾다가, 비난을 받으면 화를 냅니다. 논쟁의 심판자들이 그가 말한 바에 대해서 ‘그대는 패배했다.

논파 당했다.’고 하면, 논쟁에 패배한 자는 비탄해 하고 슬퍼하며, ‘그가 나를 짓밟았다.’고 울부짖습니다.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 일어나면, 이들 가운데에 득의와 실의가 엇갈립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칭찬을 얻는 것 외에 어떤 이익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중 가운데 자신의 의견을 말하여 그로 인해 칭찬을 받고, 마음속으로 기대한 바대로 이익을 얻으면,

그 때문에 우쭐하여 기뻐합니다. 우쭐하다면, 파멸의 장에 들어선 것입니다. 자만하고 교만한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아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하고 건전한 님은 그것을 청정이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용사여, 국왕의 녹을 먹고 사는 용사가 적의 용사를 찾아 포효하듯, 그가 어디에 있건 그곳으로 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전처럼 싸울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견해를 가지고 논쟁하여 ‘이것이야말로 진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대는 그들에게 ‘논쟁이 일어나면, 그대와 상대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십시오.

그러나 한 견해로 다른 견해를 부수지 않고, 적의를 없애고 유행한다면, 빠수라여, 그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최상의 것이라 집착한 것이 없는데, 그들에게서 그대는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그런데 그대가 정신적으로 견해들을 고집하며 논쟁하고 있으니, 청정한 님과 어깨를 겨누지만,

그대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9. 마간디야에 대한 설법의 경

[세존]

“땅하와 아라띠와 라가(갈애 혐오 탐욕)를 보고 성적 교섭에 대한 욕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두 발조차 그것을 건드리길 원하지 않습니다.”
[마간디야]

“만약 당신이 인간의 왕들이 원했던 여자, 그와 같은 보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어떠한 견해, 계율, 습관, 생활과 어떠한 존재로서의 재생을 주장합니까?”
[세존] 

“마간디야여, ‘이와 같이 나는 말한다.’라고 진술할 뿐, 그러한 나에게 가르침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관찰하면서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성찰하면서 나는 내면의 적멸을 본 것입니다.”
 [마간디야]

“성자시여, 사변적 이론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내면의 적멸을 강조하시고

그 의미를 설하는데, 어떻게 현자들이 그것을 설합니까?”
[세존]

“마간디야여, 견해나 배움에 의한, 또한 규범과 금계에 의한 청정을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마간디야여, 견해가 없고 배움이 없고 규범과 금계가 없는 청정도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을 버리고, 고집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 없이, 고요하여 존재를 갈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간디야]

“견해나 배움이나, 또는 규범과 금계에 의한 청정을 말씀하시지 않고, 견해가 없고 배움이 없고

규범과 금계가 없는 청정도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미케 하는 가르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는 것에 의해 청정해질 수 있습니다.”
[세존]

“마간디야여, 견해에 집착하여 자꾸 물어 보는데, 집착하여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그대는 내가 말 한 것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동등하다.’든가 ‘우월하다.’든가

혹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때문에 다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그에게는

‘동등하다.’든가 ‘우월하다.’는 것이 없습니다. 그 거룩한 님이 어째서 ‘진실하다.’고 하고, 또는 ‘거짓이다.’라고

누구와 논쟁하겠습니까. ‘동등하다.’든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 없다면, 그가 누구와 논쟁을 벌이겠습니까.

집을 버리고 거처 없이 유행하며, 마을에서 친교를 갖지 않는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떠나

선호를 두지 않으며, 또한 사람들과 논란을 벌여서도 안 됩니다. 용이라면 멀리 떠나 세상을 거닐어야 하므로

고집을 부려 논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테면, 물위로 솟아나 가시줄기에 핀 연꽃이 물이나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듯이,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적멸에 관해 말할 뿐, 탐욕이 없어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도 세상에도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지혜를 성취한 사람은 견해나 사변으로 판단하지 않으니 그러한 본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행위나 학식에 영향 받지 않고, 견해의 집착에도 이끌리지 않습니다. 여러 지각에서 떠나면 속박이 없고,

지혜로서 해탈하면, 미혹이 없습니다. 지각과 견해를 고집한다면 그들은 남과 충돌하면서 세상을 방황하는 것입니다.”

 

 

10. 몸이 부서지기 전에의 경

[질문자]

“어떻게 보고, 어떻게 계행을 지니면, 적멸에 이른 님이라고 합니까?

위없는 님께 묻사오니 고따마시여,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세존]

“몸이 부수어지기 전에 갈애를 떠나 과거의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눈앞의 현재에도 기대하지 않아,

그는 선호하는 바가 없습니다. 화내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악행하지 않으며,

깊이 생각하여 말하고, 거만하지 않으니, 참으로 성자는 말을 삼갑니다. 그는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애달파 하지도 않고, 모든 감각적인 접촉에서 멀리 떠나는 것을 보아, 견해들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홀로 지내며, 거짓이 없고, 탐욕스럽지 않으며, 인색하지 않고, 무모하지 않고, 미움을 받지 않고, 중상을 하지 않습니다.

감각적 쾌락에 빠지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으며, 부드럽고 총명하며, 맹신에 빠져들거나,

욕망을 떠남에도 탐착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바라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이익이 없을지라도 성내지 않습니다.

갈애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음식의 맛에 탐닉하지도 않습니다.

평정하여 항상 새김을 확립하고, 세상에서 동등하다거나 우월하다거나 또는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일체의 파도가 없습니다. 집착하지 않는다면, 가르침을 알아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존재에 대한 갈애도, 비존재에 대한 갈애도 없습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고요한 님이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에게는 매듭이 존재하지 않고, 이미 모든 애착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식도 가축도 논밭도

재산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얻지 못한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과 수행자들 또는

성직자들이 뭐라고 비난하더라도, 그에게는 무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는 말 많은 것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탐욕을 떠나 인색하지 않으며, ‘우월하다.’든가 ‘동등하다.’든가 ‘열등하다.’고 성자는 말하지 않습니다.

잣대를 걷어내 허구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것이 없고, 자기 것이 없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든 현상에 이끌리지 않으니 그야말로 참으로 고요한 님이라 불립니다.”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 제4 여덟게송의 품, 제8경, 9경, 10경 (전문)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