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법과 등불] 모임을 잘 회향했습니다.
<큰 전열의 경>과 <작은 전열의 경>에는 토론과 논쟁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논쟁은 과연 우리의 삶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느 시대에서나 논쟁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논쟁은 단순한 토론에 그치지
않고 논쟁당사자가 심지어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서 고통을 겪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명령으로 가택에서 구금되었으며,
죽은 대왕대비(장렬왕후)의 상복을 입는 기간을 놓고 벌이는 논쟁에서 선비들은
벼슬에서 쭟겨나거나 귀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15세기 영국의 대 인문학자이며
대법관을 지낸 토마스 모어(Thomas More)는 종교개혁을 단행한 헨리 8세에게
반대하다 결국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이 일어나며, 우리는 그 때마다 선택을
앞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토론으로 시작하지만, 대개 논쟁으로
비화되며 마침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끝이 납니다.
부처님도 제자들과 법담을 자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 사상가들과도
활발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승패를 나누고 그로 인해 이긴 쪽이
차지하는 명예나 진 사람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칭찬과 비난이 일어나는 논쟁을
단연코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논쟁에서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질문자]
“누구든지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면서, ‘이것만이 진리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모두 비난을 받습니까? 또는 그 때문에 칭찬을 받습니까?”
[세존]
“그것은 보잘 것 없어 평안의 가치가 없으니, 그 논쟁의 결과는 단지
그 두 가지(비난과 칭찬)라고 나는 말합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논쟁이
없는 경지가 안온하다고 알아서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 제4 여덟게송의 품, 13. <큰 전열의 경>
부처님은 진리에 대한 토론이 보편성과 당위를 표방할 때, 더욱 분노와
폭력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주장이 주관적인 신념인지 아닌지
성찰하라고 했습니다. 토론을 하더라도 교만과 상처를 남기는 논쟁은
진리를 추구하는 수단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칭찬과 비난을 단연코 거부할 수
있어야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부처님이 말하는 진리는
해탈의 진리요, 적멸(고요함)에 이르는 길입니다.
“성자의 삶을 사는 자는 이 세상에서 결박을 풀고,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한 쪽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는 불안한 자들 가운데서도 고요하며,
평정을 누립니다. 지나간 번뇌는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으며,
욕망을 추구하지도 않고 독단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현명한 님은 모든 견해를 벗어나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자신을
꾸짖는 일도 없습니다. 그는 보고 듣고 인식한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는 분별이 없고, 싫어함이 없고,
구하는 바가 없습니다.”
- <큰 전열의 경>
토론에서 승리하고 그로 인해 얻는 명예는 큰 기쁨을 일으킵니다. 논쟁에는
이처럼 실로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논쟁에 빠져 듭니다. 부처님은 논쟁이 갖는 내적 갈등과 모순을 넘어서야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고요함(적멸)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12월 16일 <법과 등불>모임에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을 만납니다.
승리와 명예의 유혹은 우리 삶의 본질이자 실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을 깨달은 부처님이 세상에 내놓은 가르침은
<멀리여읨>과 <고요함(적멸)>입니다.
숫타니파타, 제4 여덟게송의 품, 제14. <서두름의 경>은 바로 이 두 가지
뜻을 부처님께 물으면서 시작합니다.
[질문자]
“그대 태양 족의 후예이신 위대한 선인께 멀리 여읨과 적멸의
경지에 대해서 여쭙니다. 수행승은 어떻게 보아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열반에 듭니까?”
<멀리 여읨>과 <적멸>은 숫타니파타에서 가장 강조하는 불교의 핵심입니다.
특히 <멀리 여읨>은 과격하리만큼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수행법입니다.
우리는 <서두름의 경>을 통해 깨달음과 해탈에 이르는 구체적인 수행법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생생하고도 실천적인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울러 <멀리여읨>과
<적멸>에 대한 법담을 통해 오늘 우리 수행의 현실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