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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의 향기

도는 간요(簡要)하여 애초에 아무 말이 없었다.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3.17|조회수88 목록 댓글 0

다음은 운분스님의 글입니다. 운분스님에 따르면, 옛 수행자들은 한 번 높은

도리를 들으면 말없이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다 그 가운데 어쩌다 지견이

빼어난 선지식들이 글을 지어내자, 눈 먼 학인들은 게송을 외우는데 몰입하였습니다.

 

이러한 병든 풍토는 오늘 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승의 살림살이를 자기 살림인 것처럼 말하거나, 스승의 법문을 앵무새처럼

흉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송고백칙>을 쓴 설두스님이나 <벽암록>을 남긴

원오선사의 행적을 비판한 운분스님의 글은 오늘 우리 시대의 수행자들에게도

벽력같은 법문입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하며 여기에 올립니다.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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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별전(敎外別傳)의 도는 지극히 간요(簡要)하여 애초에 아무 말이 없었다.

앞사람들은 의심없이 실천하고 꾸준히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천희(天禧:1017∼1022)

연간에 설두스님이 박식과 말재주로 의미를 아름답게 한답시고 손을 대어 희롱을

하였으며, 참신하게 한답시고 교묘하게 다듬으며 분양(汾陽)스님을 이어받아,

<송고(頌古: 송고백칙)>를 짓고 당세의 납자를 농락하니, 종풍(宗風)이 이로부터

한 번 변하게 되었다.
 

선정(宣政:1100∼1125) 연간에 이르러 원오(圓悟)스님이 여기에다 또 자기의 의견을

붙이고 이를 떼어내 <벽암집(碧巖集)>을 만들었다.

그 때 옛날의 순수·완전한 경지에 매진하던 인재로서 영도자(寧道者)·사심(死心)·

영원(靈源)·불감(佛鑑) 같은 모든 큰 스님들도 그의 학설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새로 진출한 후학들이 그의 말을 보배처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외우고 익히면서 지극한 학문이라 말들 하며,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없었다.
 

슬프다!  잘못되어 가는 납자들의 공부여.

소흥(紹興:1131∼1162) 초에 불일(佛日: 대혜종고)스님이  민 지방에 들어갔다가

납자들을 끌어당겨도 되돌아보질 않고 날로 달로 치달려 점점 폐단을 이루는 것을

보고는 즉시 그 (벽암록의) 경판(脛板)을 부수고 그 학설을 물리쳐버렸다.

이로써 미혹을 제거하고 빠져든 이를 구원하였으며 번잡하고 심한 것을 척결하고

삿됨을 꺾어 바른 길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런 기세가 널리 확산되자 납자들이 이제껏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차츰 알고 다시는

흠모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불일스님이 멀리 내다보는 고명한 안목으로 자비원력을

힘입어 말법의 폐단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총림에는 두고두고 걱정거리가 남았으리라.
『여장자소서(與張子韶書)』

-선림보훈 제33 심문운분(心聞雲賁) 스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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