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라 재상인 자산(子産)은 절름발이 신도가와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신분이 높은 자산은 형벌로 절름발이가 된 신도가를 업신여겼다. 그래서 신도가에게 자기가
출입할 때면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도가가 말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다리가 완전하다고 해서 절름발이인 나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지만, 선생님이 계신 곳에 가기만 하면, 곧 마음이 쉬어져 돌아옵니다.
선생님이 나를 씻어주시는 것인지, 내 스스로 선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따라 소요한지 19년이 되지만,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대와 나는 선생님 문하에서 마음을 소요하는 공부를 하는 중인데,
도리어 그대는 몸 밖에서 나를 붙잡고 시비를 따지니 어찌 잘못이 아닙니까?"
신도가의 말을 들은 자산은 부끄러운 듯 얼굴빛을 고치며 말했다.
"이만 그치시게나."
(장자 내편 덕충부편)
사족)
백혼무인은 도가(道家)의 전설적인 스승입니다. 신도가는 자신이 절름발이인데도
스승 백혼무인과 함께 있으면 자신이 불구자임을 잊는다고 하였습니다.
신도가가 절름발이가 된 것은 형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춘추전국시대에는 국가끼리 전쟁이 빈번했습니다.
국가는 백성들을 전쟁에 앞세우고 군역 식량 옷 등의 부담을 지웠습니다. 이를 위해 법령을 세우고,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형벌로 다스렸습니다. 형벌이 남발되어, 백성들 사이에는 벌을 받지 않는 것을
요행으로 여길 정도였으니 백성들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신도가 또한 무슨 일인지 모르나 태형을 받은 사람입니다. 태형은 발을 못쓰게 만드는 형벌이니,
신도가 역시 억울함이나, 분노, 회한이 많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도가는 스승의 곁에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장애나 죄의식이 씻어졌습니다.
자신에 대한 도덕적 평가나 장애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장자(莊子) 덕충부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읽노라면, 바로 이것이 도가(道家)의 옛 사람들이
공부하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말없는 가르침(不言之敎)은 노자도 일찌기 말했지만,
유마거사 또한 최상의 진리를 침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같이 있기만 해도 저절로 깨달음과 마음의 평화를 얻게되는 옛 스승들의 가르침은 요즘 소리 요란한
법회나 설교를 생각하면 더욱 울림이 큽니다. 신도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참다운 법회가 무엇이며,
참으로 마음을 쉬는 수행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봅니다.
'소요(逍遙)'란 '멀리 떠나 노닌다'는 뜻으로, 여행과 뜻이 통하는 말입니다.
낫선 곳이나 먼나라로 여행하면 누구나 어깨가 가벼움을 느낍니다. 이런 저런 일상의 시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지요. 소요란 이렇게 남을 시비평가하는 태도에서 멀리 벗어나 무심하게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공부입니다. 소요는 뒤바뀐 생각을 깨닫게 해주는 도가의 마음공부입니다.
- 여운(如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