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이 세상에 가장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성탄절 날이면 교회마다 따로 성소를 마련해서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나신 뜻을 새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짐승들이 사는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이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신의 겸손한 뜻을 더 잘 나타내는 설교가 또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지구촌의 현실은 신의 뜻과는 너무 멀어 보입니다. 지난 5년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31만명이 목슴을 잃었으며, 480만명이 비참한 난민의 처치로 해외를 떠돌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한 시리아 어린이가 죽은 채 해변에 떠내려와서 온 세계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생명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조류인플루엔자로 목숨을 잃은 가축의 숫자가 25백만 마리를 넘어섰습니다.
이 모든 현실은 인간이 스스로 저지른 업보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면, 더욱 면목이 없습니다. 국가나 단체도 규모가 크고 부강할수록 그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은 겸손보다 권위입니다. 숫자와 규모를 숭상하는 문명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이 가야할 바른 길이 아님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도 숫자와 규모에 대한 우상은 견고하게 살아있습니다. 마음을 닦는 수행자라면 먼저 자기 발밑을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며칠 전과 달리 날이 다시 풀렸습니다. 굴다리에는 평소와 다르게 자가용 차량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있었습니다. 청계천에서 성탄절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세워둔 차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굴다리 안에는 오가는 차량이 한 줄로만 교행을 해야 해서, 거사님들이 운신하는 폭이 더욱 좁았습니다. 제영법사는 차량과 거사님들에게 조심해달라고 큰 소리로 외쳐야 했습니다.
오늘 오신 거사님들은 대략 90여명입니다. 오늘 보시한 음식은 밀감 350개, 백설기 250쪽, 둥굴레차와 커피 각각 100여 잔을 보시했습니다. 봉사자들은 퇴현 전재성 박사와 운경행님, 그리고 거사봉사대의 해룡님과 종문님입니다. 오늘따라 감사의 인사를 하는 거사님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이 금년 마지막 일요일이니, 올 한 해를 잘 보낸 인사의 뜻으로 들렸습니다.
돌아 보니, 올 한 해도 참 빨리 흘렀습니다. 독거노인 반찬봉사, 사진예술반 활동, 그리고 을지로 따비 등 이 모든 우리 작은손길의 활동이 올 해도 차질없이 잘 진행되었으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모두 불보살님들과 회원님들의 자비심이 이룬 결과입니다. 이 모든 고요한 과정을 생각할수록, 백 번 천 번을 주어도 상을 내지 않는 무주상보시의 덕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무주상보시는 오직 자기 발밑을 보는 수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