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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따비

7월 26일 일요일 을지로 따비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7.26|조회수32 목록 댓글 0

유마거사는 부유한 장자의 아들들에게 출가를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장자의 아들들은 부모의 허락이 없이는 출가를 받지 않는 부처님의

계율을 들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그대들이 위없는 올바르고 완전한 깨달음(무상정등정각)에

마음을 내면, 이것이 곧 출가이며, 이것이 곧 구족계를 받은 것입니다.”

(유마경 제자품)

 

사실 출가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깨달음에 뜻을 내는 것만으로도 구족계를

받은 비구와 같다고 말합니다. 유마경은 이처럼 츨가와 재가의 형식을 넘어, 

출가의 본질을 강조합니다. 형식과 제도를 뛰어넘는 일은 한 시대의 타락과

위기를 목격한 사람의 몫입니다.

 

깨달음에 마음을 내는 일은 말은 쉽지만, 실제 그 행위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의 행위 속에 탐욕과 성냄은 없는지, 남을 업신여기는 어리석음은

없는지 살피는 일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야하며 그 과정은 매우 고독합니다.

요가나 토론은 그룹으로 할 수 있지만, 성찰은 이처럼 고독한 일입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숲에서 홀로 지내는 삶에 만족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한 거사님이 술을 마셨는지 혼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급기야 주위에서 조용히 하라고 언성을 높이는 젊은 거사와 격투가 벌어졌습니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당할 수 없지요. 다행히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아 굴다리안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우리의 따비도 합장과 함께 평화롭게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떡과 과일을

드리면서 가까이 본 그 거사님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얼굴은 순진해 보였습니다.

 

따비를 끝내고 오는 길에 차안에서 제영법사와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이든 거사님이 무슨 사연이 있어서 술을 마시고 그토록

시끄럽게 노래를 불렀는지, 그 거사님의 고단한 삶을 생각했습니다.

그 절절한 사연이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런 행동의 원인에는 그 거사님이

겪었을 적막한 만남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거사님의 외침은 벽과 같은

주위의 침묵에 대한 분노의 표출일 수 있고, 어쩌면 소통과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호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노를 성찰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분노 속에서 언제나 만나는 것은 두려움과 무관심의 벽입니다. 

나와 남을 만들어내는 벽에 갇혀 있는 한, 분노와 슬픔은 우리의 굴레입니다. 

우리 삶의 고통과 위기를 바라보며, 속박과 해탈에 대한 물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깨달음에 뜻을 세우는 것은 고통에 눈을 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출가는

고통의 원인을 보고, 그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걷는 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노병사를 관하는 무상관을 닦으면, 벽의 실체에 대해,

그리고 벽이 형성되는 원인과 조건에 대해 조금씩 눈이 열리게 됩니다.

 

오늘은 백설기 200쪽, 천도복숭아 250개, 커피 100잔, 둥굴레 100잔을 보시했습니다.

해룡거사님, 병순거사님, 백발거사님, 그리고 보리 호원순님이 보살행을 해주셨습니다.

100여명의 거사님이 오셨고, 짧은 시간이지만 평온하게 회향했습니다. 

오늘 보시를 만들어준 모든 인연있는 분들께 합장합니다.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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