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의 해갈을 풀어주려는듯,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풍물시장은 상점 문을 열지 못한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않아 비 오는 날씨에도 기온은 온화하기만 합니다.
세찬 가을바람이 없어 은행나무는 아직은 반쯤 붙은 잎으로
가로등 불빛에 자신의 건재함을 드러냅니다.
을지로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굴다리 안에 뻗은 줄은 평소보다 길어 보였습니다.
오늘은 110여명의 거사님이 오셨네요. 비가 내리는 날일수록,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릴수록 거사님들이 많이 옵니다.
궂은 날씨에 딱히 갈 곳이 없는 이들의 사정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이티아이 한마음회의 김철중 부사장님과 장자경님,
안영화님, 그리고 윤옥향님 부부께서 오셔서 보살행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퇴현 전재성 박사와 운경행 홍인숙님이 오셨고, 거사봉사대의
해룡거사님, 백발거사님 그리고 병순거사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보시한 백설기 250쪽, 감(연시) 260개, 커피와 둥굴레차 각
100여잔은 모두 우리이티아이 한마음회에서 부담해주셨습니다.
감을 드신 몇 몇 거사님은 봉지에 감과 휴지를 함께 넣어서 손과 입을
닦기 편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작은 배려에도 지나치지 않고
감사를 전하는 그 마음이 고맙습니다.
어두운 굴다리에서 사람들은 따끈한 백설기와 감을 먹고, 차를 마셨습니다.
이 순간만은 어둠과 적막은 멀리 사라지고, 사람의 기운이 굴다리안을 메웁니다.
사람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시는 기운은 생명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굴다리안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자취가 사라지고, 오직 생명의 활발한
움직임만 남아있습니다. 헛된 것은 사라지고, 법성의 광채만이 가득합니다.
만법이 공성(空性)인 진리를 깨닫고, 자기와 남을 나누는 무명(無明)에서
벗어나는 일은 방석 위의 수행이 아니라, 배려와 나눔의 행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하게 됩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