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월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습니다. 어둠이 내려앉은 을지로 굴다리에는
8시가 넘어서야 거사님들이 한 두 분씩 모여 들었습니다.
양쪽으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거사님은 오늘따라 걷는 모습이 몹시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 거사님은 몸이 불편한 중에도 우리 봉사자들에게
늘 천진한 미소를 보내주는 반가운 도반입니다.
나중에 제영법사가 물어보니, 먹는 약은 진통제가 전부입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알씩 복용했는데, 지금은 약효가 서 너시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약은 주로 서울역 인근 노숙자를 돌보는 의사들이나,
교회 의료봉사단에서 받습니다.
몸이 아프고 거동이 불편한 거사님이 어떻게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짓는지,,,
그 분이 건내는 인사를 받기에는 작은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 자신의 삶이 보여 부끄러웠습니다.
오늘은 바나나 300개, 백설기 250쪽, 커피와 둥굴레차 각각 100여잔을
보시했습니다. 오늘 보살행을 해주신 분은 퇴현 전재성 박사, 을지로 거사
봉사대의 해룡거사님, 병순거사님, 종문거사님과 한 젊은 거사님입니다.
오늘 오신 거사님은 대략 90여명입니다. 오늘 처음 보는 한 보살님은
목이 몹시 타는 듯, 선 자리에서 둥굴레차를 석 잔이나 마셨습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일요일 저녁시간, 비록 어두운 굴다리 안이지만,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우리를 모이게 합니다. 짊어진 삶이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함께 담소를 나누고 떡과 차를 마실 수 있으니,
세상에 희망이 존재하는 까닭입니다.
무주상보시를 보여주신 부처님과 보살님들께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