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설을 쇠고 처음 맞는 을지로 따비입니다.
낮에 떡집에서 배달받아 아랫목에 모셔놓은 떡은 아직 따뜻합니다.
과일가게에서 받은 귤은 작지만 맛이 있었습니다.
제영법사가 비닐 한 봉지에 귤 6개를 싸서 포장을 했습니다.
날이 어둑해질 때, 떡과 과일 등 보시물을 싣고 나오니
풍물시장 앞 노점상들은 짐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조금 세게 불었지만 몸은 그다지 움츠려 들지 않습니다.
이 추위가 지나면 봄이 오겠지요.
오늘 따비도 평소와 같이 평화롭게 진행하였습니다.
보시를 진행하면서 갑자기 거사님들에게서 바로 엊그제가 설이라는
느낌이 오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사님들 대부분이 여러 해
만난 분들이라 마음 한 구석에 그 분들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 그 분들의 표정에서 새삼 거사님들의 삶이
아직 나에게는 관념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관념을 관념으로 받아들이며, 다시 그 분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갈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변화하는 현실에 대해 눈을 감지 않으리라 늘 마음에
새기지만, 나의 인식이 현실을 반영하는지 성찰하는 일은 참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백설기 200개, 귤 600개, 둥굴레차 100잔과 커피 100잔을
보시했습니다. 그리고 전재성 박사와 을지로 봉사대들이
보살행을 해주셨습니다.
봉사대 중 한 분이 나오지 않아 마침 근처에 서 있는 젊은 거사에게
부탁을 하니, 선뜻 떡을 나누어주는 일을 맡아 주었습니다.
이 젊은 거사는 가끔 거친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 오늘 떡을 받는 몇몇
거사님들은 이 청년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다 끝나고 회향하려 할 때 같이 합장하자고 그 청년을 불렀습니다.
젊은 거사는 쑥스러운지 굴다리 저 쪽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부르는 우리를 외면하였습니다.
청년의 순진한 속 마음을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법회를 만들어주신 중중무진의 보살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두 불보살님의 지혜와 자비의 가피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