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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길] 편지

2013년 4월 회계보고를 드리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3.07.10|조회수13 목록 댓글 0

회원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장마철을 맞아 날이 많이 궂습니다.

어릴 때 장마철을 생각하면, 마루에 앉아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정경이 떠오릅니다.

비에 젖어 흥건해진 마당에는 동그라미들이 끝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눈으로 코로 귀로 몸으로 온통 비가 가득했지요.

지금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그 때와 참 다릅니다.

우선 아파트에 살다보니 빗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동심원을 끝없이 바라보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거실에 앉으면 서늘한 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와 상쾌하지만, 이내 주의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갑니다.

오관이 활동할 시간과 기회가 줄어든 반면, 신문이나 인터넷매체를 통해 시시비비할 거리가 마음을 분주하게 합니다.

시시비비에 마음을 쓰다 보니, 오관을 통해 직접 세상과 소통하고 경험하는 일이 아주 서툴러 졌습니다.

 

부처님에게 한 늙은 수행자 바히야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이미 피안에 도달한 아라한이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우연히 석가족의 성인(석가모니)이 아라한이라는 소문을 듣자 누가 진리에 대해 많이 아는지,

누구의 도가 더 높은지 따지고 싶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늙은 수행자의 얼굴에서 남을 이기려는 승부욕과 명예욕을 보셨음이 분명합니다.

늙은 수행자에게 건넨 부처님의 말씀은 그대로 불교수행의 핵심입니다.

 

"바히야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와 같이 배워야 합니다.
볼 때는 볼 뿐이며, 들을 때는 들을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할 뿐입니다.

볼 때는 볼 뿐이며, 들을 때는 들을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할 뿐이므로, 바히야여, 그대는 그것과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대가 그것과 함께 있지 않으므로, 그대는 그 속에 없습니다.
바히야여, 그대가 그 속에 없으므로, 그대는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그리고 그 중간 세상에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괴로움의 종식입니다." 
- 우다나(감흥어린 시구) 깨달음의 품 제1-10 바히야의 경(요약) 전재성 역

 

 

기상학자들은 요사이 장마를 게릴라성 장마라고 합니다.

장마에 대한 묘사나 개념이 장마에 대한 경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바라봐도 세상사와 씨름하는 일은 많아지고, 자연을 만나 경이로움을 느낄 기회가 더 적어지고 있습니다.

오관을 통하지 않고 만나는 자연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으니 죽은 자연입니다.

우리의 순수한 감각은 갈수록 초라하고 적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보면 기초가 빈약한 집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오관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풍성한 소통이 있어야 그 위에 인식하는 마음이 연민의 지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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