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바람에 날리며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가을 햇빛에 눈이 부십니다.
저는 10월 마지막 주말 집사람과 함께 남한산성에 다녀 왔습니다. 장경사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다보니 온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네요. 옛 시에서 읽은 만산홍엽(滿山紅葉)이 실감났습니다.
가을 산에 들면, 우리의 몸은 기쁨으로 가득하고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집니다.
사람들의 탄성도 정겹습니다. 황홀한 가운데 흘러나오는 감탄사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고, 학력이나 빈부의 차별이 없습니다. 나무와 숲이 보여주는 광경 앞에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자연과 하나가 됩니다. 시름없이 바라다보면, 굳어진 얼굴이 펴지고,
어릴 때의 표정이 살아납니다. 새삼 인간은 모두 자연의 산물이며, 감정을 서로 나누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비가 한차례 내리고 날이 더 추워지면, 단풍은 모두 땅에 떨어지겠지요.
가을은
하나의 잎이 단풍과 낙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모두 보여줍니다. 단풍과 낙엽은 같은 몸이지만,
어찌 그리 다른 느낌을 불러오는지요? 단풍은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하게 해주지만, 낙엽은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어느 스승이 이처럼 기쁨과 감성과 지성을 다 얻게 해줄까요?
남한산성을 내려오며, 불교의 선(禪定)을 생각했습니다.
불교의 선(禪)은 사색(ponder over)을 뜻합니다. 부처님은 선을 네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선정에서 수행자는 외진 곳에서 앉아 번뇌를 멀리하며 희열과 행복을 얻습니다.
둘째 선정에서는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얻습니다.
셋째 선정에서는 희열이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욕망과 집착을 올바로 알아차리며
행복을 느낍니다. 마지막 넷째 선정에서는 행복도 고통도 버려지고, 기쁨도 근심도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청정한 단계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새김이란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이해하는 지성입니다.
초기불교의 선을 생각하며 그 과정이 마치 가을단풍을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풍을 보며 잠시나마 시름에서 벗어나 기쁨을 느끼는 것은 첫째와 둘째 선정과 비길 수 있습니다.
낙엽을 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셋째와 넷째 선정에서 새김을 확립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가을이 오면 자기도 모르게 사색에 잠기듯이, 선의 원래 모습은 이토록 기쁨과 행복을 소중이 여기며,
지성을 얻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수행이 무엇인지 묻게 됩니다. 자신의 수행경력이나 고행을 내세우거나,
경전에 대한 학식을 자랑하지만, 메마른 느낌을 주는 수행자가 적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버리고, 수행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받아들이신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如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