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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길] 편지

작은손길(사명당의집) 12월 활동보고를 드리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1.05|조회수53 목록 댓글 1

회원 여러분, 2015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지나간 해가 얼마나 빠른지요?

세월은 흘러가 흔적이 없지만, 마음속에는 아직도 흐르지 못하고 걸려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속을 살펴보면, 주로 사람에 대한 실망과 그로 인한 분노입니다. 저 자신의 못난 점도

탄식을 남기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일어난 분노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억울하게 당했다고 기억되는 일에는 분노가 여전히 생생합니다. 늙을수록 미움과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올 해는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자주 보려고 합니다.

 

세상 살면서 억울하고 분한 일을 만나는 것은 고금이 다르지 않지요.

송나라 때 절에서 일어난 일을 적은 <총림성사>에는 정신이 번쩍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법정(法淨)스님은 무주 영응사 강주(講主)였습니다. 법정은 명성이 높아

많은 사람들의 귀의를 받았습니다. 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대단한 가람을 일궈냈습니다.

그러나 무슨 악연인지 가까운 후배스님에게 주지자리를 빼앗겼습니다. 법정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세도가인 섭승상에게 호소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승상은 이렇게 답장을 썼습니다.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과 저는 지난 세상부터 인연이 있고,

한 고향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며, 누가 물으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스님의 본분이 강백이며 영응사에 주지하는 40년 동안에 기와더미만 쌓여있던 곳을

아름다운 사원으로 가꾸었고, 금어(金魚)와 북소리가 일 년 내내 그치지 않게 했으므로

사원을 일으켰다고 자부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힘들여 짓는 보전(寶殿)이

준공되려는 즈음에 파계승 후학이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켜 교묘한 계략으로 스님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 하니, 세간의 생각으로 논한다면 까치집에 비둘기가 사는 격으로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본분으로 말한다면, 나의 몸도 나의 것이 아니며 모든 법이 한낱 꿈이요

환상이니, 영응사라 하여 어찌 오래도록 스님 혼자만의 생활터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머물 땐 외로운 학이 소나무 꼭대기에 차가운 날개를

쉬고 있는 듯하고, 떠날 땐 조각구름이 잠깐 세상에 스쳐가듯 한다’고 하였으니,

떠남과 머뭄에 깨끗이 처신한다면 무슨 매일 것이 있겠습니까. 

머물려 해도 머물 것 없어야 바야흐로 떠나고 머물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번에 떠나시거든 푸른 소나무 아래 밝은 창가에 편히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사대사(生死大事)의 인연을 깨닫는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태수에게서 도움을 빌리려 한다면, 그것은 겨드랑이에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만법이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면, 스님에게는

범부가 성인으로 탈바꿈되는 전기가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허리춤을 싸쥐고 어서 저 신부(新婦)나 맞으러 가십시오.”  

 

 

부처님은 금강경 마지막 단락에서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 꿈이요 허깨비며, 물거품과

그림자와 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고 말씀했습니다. 성철스님도 용맹가운데 가장 큰 용맹은

옳고도 지는 것이요, 공부 가운데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범부로서는 이렇게 들어가기가 쉽지 않지요. 제게는 소동파의 시가 더 다가옵니다.

북송시대에 노장과 불교에 밝았던 소동파(1037-1101)는 벼슬살이를 하면서 여러 번 귀양을 갔습니다.

그 과정에 이런 저런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만년에도 7년 동안 귀양살이를 갔다가 

안타깝게도 돌아오는 길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글 중에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모두 오래 살기를 바란다>란 시가 있습니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고향의 형제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몇 구절만 추려서 옮깁니다.  

 

明月幾時有(명월기시유): 밝은 저 달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把酒問靑天(파주문청천):  술잔 들고 저 푸른 하늘에게 물어본다.

轉朱閣(전주각): 달은 붉은 누각 돌고 돌아,

低綺戶(저기호)照無眠(조무면) : 아름다운 창가에 다가와, 잠 못 이루는 사람 비춘다.

不應有恨(불응유한):  달은 나하고 원한이 없으련만

何事長向別時圓(하사장향별시원):  어이하여 언제나 헤어져 있을 때 둥근 걸까?

人有悲歡離合(인유비환이합):  사람에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月有陰晴圓缺(월유음청원결):  달에는 맑고 흐림,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으니,

此事古難全(차사고난전):  무상한 풍파에는 예부터 온전하기 어려워라,

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  다만 우리 모두 오래오래 살아서

千里共嬋娟(천리공선연):  천리 떨어져서도 저 달 같이 보기를 바라노라.  

 

인간사에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이 있고, 저 밝은 달에도 맑고 흐림, 둥글고 이지러지는

때가 있다는 구절을 읊다보면 정치의 소용돌이에 시달린 소동파를 보는 듯합니다. 

세상 풍파를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뜻은 심오한 도가(道家)의 사상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소동파의 속마음은 체념과 달관 그 어디쯤이지 않을까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오래 살면서 형제들과 달을 같이 보고 싶다고 하니, 그는 이제

시시비비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하며 소박하고 유유자적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단원인장구>는 당시(唐詩)와 송사(宋詞)에 해박한 가까운 선배님 덕에 알게 된 것인데, 

읽을수록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좋은 글을 읽으니 지난 해 묵은 짐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여운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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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碧眼 김경숙 | 작성시간 15.01.05 마음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보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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