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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길] 편지

작은손길(사명당의집) 1월 활동보고를 드리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2.17|조회수62 목록 댓글 0

회원님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엊그제(2월 4일)가 벌써 입춘입니다. 점심을 먹고 선릉을 산책하는데

멀리 보이는 나뭇가지에 초록빛이 어른거립니다. 마치 허공 속에서

초록의 요정이 가지위에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보일듯 말듯한 아기 초록빛은

다가올 봄을 상상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 충분합니다.  


지난 몇 달간 유아원에서 어린 아이를 학대하는 사건이 매일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도되었습니다. 시시티브이(CCTV)를 통해 아이들을

학대하는 장면을 접하면 눈을 감고만 싶습니다.

 

연약한 아이를 밀치면, 아이는 그야말로 종이가 날아가 듯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모든 유아원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세상에 대한 불신과 절망이 가슴을 막습니다.

뉴스에는 부모와 유아원장 사이에 고성이 오고 가는 장면을 연일 보도합니다.

잘못을 따지며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요즘처럼 통신망이 발달한 세상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비난과 루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갑니다. 설사 잘못이 밝혀졌다 해도

사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과가 건성이라는 것을 누구도

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참회해야할 사람이 돌아서서 복수를 다짐했다는

보도에는 참담한 마음마저 일어납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성숙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을 눈 감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해결해나가는 좀 더 성숙한 과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잘못을 사과한 사람이 진정으로 짐을

벗어야 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증오와 오해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장자(莊子)에는 신도가라는 절름발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도가는 자산(子産)과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였습니다.

백혼무인은 도가(道家)의 전설적인 스승입니다. 자산은 정나라 재상을

지낼 정도로 벼슬이 높았고, 신도가는 반대로 죄로 태형을 받아 절름발이입니다.

자산은 신도가가 자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정나라 재상인 자산(子産)은 절름발이 신도가와 함께 백혼무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다. 신분이 높은 자산은 형벌로 절름발이가 된

신도가를 업신여겼다. 그래서 신도가에게 자기가 출입할 때면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말했다. 그러자 신도가가 말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다리가 완전하다고 해서 절름발이인 나를

비웃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화가 치밀지만, 선생님(백혼무인)이

계신 곳에 가기만 하면, 곧 마음이 쉬어져 돌아옵니다.

선생님이 나를 씻어주시는 것인지, 내 스스로 선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따라 소요한지 19년이 되지만,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그대와 나는 선생님 문하에서 소요를 하는 중인데, 도리어

그대는 몸 밖에서 나를 붙잡고 시비를 따지니 어찌 잘못이 아닙니까?" 
신도가의 말을 들은 자산은 부끄러운 듯 얼굴빛을 고치며 말했다.

"이만 그치시게나."

(장자 내편 덕충부편)


강제로 절름발이가 된 신도가는 스승의 곁에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고통이나 죄의식이 씻어졌습니다. 신도가가 스승 백혼무인에게서 배운 것은

소요(逍遙)입니다. 소요란 ‘멀리 떠나 노닌다.'는 뜻으로, 여행과 뜻이

통하는 말입니다. 낮선 곳이나 먼 나라로 여행하면 누구나 어깨가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이런 저런 일상의 시비(是非)에서 벗어나기 때문이지요.

 

이렇듯 소요란 시비평가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무심하게 사믈을 대하는

도가(道家)의 소통방식입니다. 도가에서는 소요를 통해 세상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스승과 같이 있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 신도가의 이야기는 요즘 소리 요란한

설교나 법회를 생각하면 더욱 울림이 큽니다.


시비를 따지며 잘잘못을 가릴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쉬게 하지는 못합니다.

인내와 관용으로 긴 호흡을 하는 것이 왜 이리 먼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는지요.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입바른 소리로 끝나고

증오와 두려움만 남는 현실은, 인간의 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합니다.

<장자> 신도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사회의 성숙에 대해,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 쉬어지는 용서와 참회의 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2015, 2. 07,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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