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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길] 편지

작은손길(사명당의집) 4월 활동보고를 드리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5.05.07|조회수22 목록 댓글 0

회원님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작은손길>의 예술반 학생들은 대부분 북한 이탈주민의 자녀들입니다.

부모와 함께 건너 왔으니,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는 정상적인 가정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학생들 중에서도 탈북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으로 적지 않은 학생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앓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예술반 학생 중에도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놀이기구가 있는 야외에 가도, 혼자서 스마트폰 게임에만 몰두합니다. 세상과의 소통을

외면하는 것은 아이 스스로 탈북과정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학교에서 북한과의 학력차이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인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혹 또래

학생들이 왕따로 만들어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나서는 놀라우리만치 빨리 회복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저는 생명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생명의 회복력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지난 6, 7년 동안 예술반을 지도해온 제영법사는 이 학생이 앞으로 1, 2년 지나면 서서히

예술반 친구들과 어울릴거라고 낙관합니다. 제영법사는 이런 학생일수록 무심하게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몇 년이 지나면서 어느덧

활기차고 명랑해진 학생을 여럿 보았습니다.


소통을 외면하는 일은 을지로 노숙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말 한 노숙하는 여성이 둥굴레차를 한 병 채워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페트병에 차를 따라주면서, 저는 그 보살님의 목소리가 너무 반가웠습니다.

몇 명 되지 않지만, 노숙하는 보살님들은 대개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페트병을 내밀 뿐이지요. 그 보살님을 보니, 여느 여성노숙자처럼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아직 노숙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입니다. 말을 걸어주는 소통의 기쁨도 잠시일 뿐,

언젠가는 이 분도 다른 분들처럼 말이 없어지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무명(無明)이 큰 파도와 같이 사람을 어지럽히는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답답할 때 저는 가끔 <자애의 경>을 읽습니다. <자애의 경>에는 밥을 얻으러 탁발을

다니는 제자에게 부처님이 당부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습니다.

당시 성직자들이나 유행자들은 밥이나 재물을 얻기 위해 축복을 핑계로 보시를 요구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저주의 주문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무명이 종교의 이름으로 그 끈질긴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종교의 권위를 이용해 남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그것으로

재물을 요구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부처님이 가르친 그 한량없는

자비의 마음에 다 이르지 못하더라도, 아직 이러한 가르침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놓치지 않고 정진하게 됩니다.


선한 일에 능하고 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는

남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여야 한다.

남의 가정에서 무모하거나 집착하지 말라.

서로가 서로를 속이지 말고 헐뜯지도 말지니,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분노 때문이든 증오 때문이든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말라.

모든 존재들은 안락하라. 모든 존재들은 행복하라.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 모든 존재를 위하여

이와 같은 자애로운, 한량없는 마음을 닦으라.

- 숫타니파타(전재성 역) 제1 뱀의 품, 제8. 자애의 경 중 일부 인용(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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