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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손길] 편지

최근 작은손길 활동과 9월 회계보고를 드리며

작성자여운 김광하|작성시간13.12.13|조회수10 목록 댓글 0

회원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이제 올 해도 다 저물어 갑니다. 어제부터 갑자기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졌습니다.

한 해가 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집니다.

후원해주시는 회원님들을 생각하면, 제가 과연 잘 하고 있는지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올 해에도 회원님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단체는 연말정산용 기부금영수증을 발행할 수 없습니다.

법적인 영수증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사무인원 등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우리 단체는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운영하여 사무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회원님들의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을지로에 나간 지 벌써 10년입니다. 그때부터 얼굴이 익은 사람도 20-30명이 되고, 최근

3, 4년쯤 자주 보는 사람들도 반이 넘습니다. 얼굴이 익지 않는 사람은 10여명쯤 될 것입니다.

그만큼 노숙자가 되면 다시 자신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세상살이가

그만큼 각박한 탓도 있겠지요.

 

한 십여 년 동안 이 분들을 만나고 나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분들의 눈이나 얼굴에서 경계의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에 대한 경계의식이 사라질수록 우리를 보는 얼굴이나 눈이 편안해지는 것을 봅니다.

때로는 어릴 때 느끼는 우정이랄까, 그런 소박한 감정마저 느낍니다. 이런 느낌이 저의 주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은 을지로에 와서 함께 봉사하는 회원님들도 종종 같은 말씀을 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안과 밖으로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준다'는 관념이 없을 때 보시가 청정해진다고 부처님은 말씀했습니다.

무주상보시는 금강경의 가르침인데, 아시다시피 금강경은 너와 나, 일체 존재의 실상이 모두

비어 있다(空)고 가르칩니다. 사실 공성(空性)의 도리가 젊었을 때는 다소 추상적이었으나,

지금은 '너다, 나다'하는 대립과 경계심을 놓아 편안함과 소박함을 가져오는 가르침으로 다가옵니다. 

최근 육조단경을 읽으며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世人若修道 一切盡不妨

세상사람이 도를 닦으면, 일체가 다 방해가 되지 않는다. 

常自見己過 與道卽相當

항상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보면, 도와 더불어 서로 합당하리라.

色類自有道 各不相妨惱

사람들이 도를 갖추면, 각자 서로 방해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리.

(육조단경 ㅡ 정혜품, 무상송(無相頌) 중 일부 인용)

 

요사이 정치판을 보면 사색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좌우 여야 등 진영의 논리가 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토론을 할수록 '너와 나'의 대립의식이 앞서고 미움과 의혹이 커집니다.

육조대사는 세상사람이 도를 닦으면 일체가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빈 것을 이해하면 대립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서산대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수행자의 일상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조금 떨어져 보는 지성(知性)을 우리 사회가 언제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생각하면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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