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뉴스에 보니,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주자가 9일 와이오밍 주에서 치러진 코커스(당원대회)에서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승리했습니다. 이날 경선에서 샌더스는 55.7%를 득표해 44.3%를 얻은 힐러리를 이겼습니다. 샌더스 후보는 8개 경선 중 연달아 7곳에서 힐러리보다 표를 더 얻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다음 뉴스입니다. 샌더스 상원의원은 뉴욕 경선을 나흘 앞둔 오는 15일 바티칸을 방문한다고 밝혔습니다. 샌더스의 방문은 교황청 과학원의 초청으로 이루어 졌다고 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 면담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샌더스는 “세계경제에 사회정의와 환경의 지속가능함을 회복하는 것을 토론하는 바티칸 회의에 초청 받아 기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가 경제 불평등을 줄이고 금융부패를 중단하며,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한 세계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일찌기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소외와 불평등을 가져오는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멈춰!’라고 소리치며 거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노인의 이야기는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증시는 조금만 하락해도 그에 관한 기사들이 폭주하는,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갈등과 분열이 심해지는 세상에 프란치스코 교황과 샌더스 의원이 서로 만난다고 하니 결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서로 머리를 맞댈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교황이 아직 경제를 모른다, 경제공부가 더 필요하다. 어두운 사회의 일부 현실에 매몰되어 자본주의 전체를 못 보고 있다.'고 항변합니다.
2015년 우간다를 방문한 교황은 전 세계 부유한 정치 및 경제 엘리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 것이며, 불평등 초래에 스스로가 어떻게 이바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봐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작년 3월 한국의 사제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사제들이 안락함을 추구하며, 신자 위에 군림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따끔하게 지적했습니다. 저는 가끔 언론에 회자되는 교황의 말씀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나곤 합니다. 그 분의 메세지는 우리가 진정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의 제도는 무엇을 위해 있는지 천둥같이 일깨웁니다.
나이들수록 자신의 지성을 살피고 되돌아 보는 일이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내적인 성찰과 고요한 선정으로 어리석음과 탐욕을 극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욕망의 거센 물결을 건너느냐고 한 수행자가 묻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계행을 갖추고(탐욕과 분노를 삼가하고), 지혜가 있고, 선정에 들고,
성찰할 줄 알고, 새김을 확립한 사람만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건넙니다.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묶인 지각을 여의고, 모든 결박을 뛰어넘어,
존재(대상)에 대한 욕망을 멸해 버린 사람, 그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지 않습니다.
- 숫타니파타(전재성역) 뱀의 품, <헤마바따의 경> (23 - 24 구절)
계행을 지니고, 성찰하며 스스로 새김을 갖추고, 고요히 선정에 드는 일은 초월적인 가르침도 아니요, 세상을 놀라게 할 초인적인 고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세상의 이목을 끌기 어려운 평범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초월적인 권위나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고행은 결국 사람을 속인 일이요, 그 당사자들은 오히려 욕망에 묶여 있었던 사실이 드러납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겸손하게 대상과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욕망과 결박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길만이 자기를 지키는 등불이라고 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