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12월도 이제 중순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12월이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차분한 시간을 갖게 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시간마저 사치스러울 정도로 큰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침묵하던 다수의 국민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청와대를 보면 안타깝고 참담합니다.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행렬에 여느 나라처럼 상점이나 은행 하나 털리는 일이 없고, 연행자도 한 명 없으니, 시민들의 도덕의식이 존경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혼란 속에서도 앞날에 대해 그리고 다음 세대에 희망과 믿음을 갖게 됩니다.
내년에는 제가 세는 나이로 65세가 됩니다. 한 두 해가 지나며, 몸도 마음도 기력이 확실히 떨어집니다. 저는 원래 눈이 좋아 늦게 까지 책을 보아도 피로를 몰랐는데, 근자에는 조금만 책을 보면 눈이 가물가물하고 글자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이른 아침 참선도 자꾸 시간이 늦어집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며, 하는 일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지난 몇 달 동안 고민하던 바를 존경하는 회원님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동안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꾸려온 작은손길의 활동을 내년 2월 말로 모두 회향하려고 합니다. 우선 현재 진행 중인 활동 중, 매주 수요일 독거노인 반찬봉사는 12월 말로 종료합니다. 그리고 을지로 노숙자와 탈북청소년 활동은 겨울을 감안하여 내년 2월 말까지 지속하려고 합니다. 2월 말 을지로 따비와 사진예술반 활동을 끝으로 3월 초에는 모든 작은손길 후원통장과 CMS 후원계좌를 모두 해약하고 종료하겠습니다. 회원님들이 일일이 은행에 가서 후원을 취소하지 않더라도 더 이상 후원금이 통장에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 2월말 통장에 후원금이 남으면 3월초에 사진예술반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보시하겠습니다. 해서 저의 활동보고는 3월초까지 계속 보내드립니다.
돌이켜보면, 2002년 김포에서 외국인노동자 상담활동을 시작하여, 2004년 작은손길을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어느덧 15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가는 곳마다 따뜻한 손을 내미는 관세음보살님을 만났습니다. 외국인노동자, 노숙자, 독거노인, 탈북청소년들은 우리들에게 천사의 미소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기쁨은 그동안 묵묵히 봉사를 해주시고 후원을 해주신 회원님들이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회원님들이나 이름 모르는 많은 분들이 크고 작은 후원을 해주실 때마다 늘 내가 이런 귀한 정재를 받을 자격과 덕이 있는지 어깨가 무거웠고, 또 한 편 가슴이 뭉클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말없이 작은손길을 후원해주신 여러 회원님들과 봉사자님들께 감사의 삼배를 올립니다.
이제 곧 모든 활동을 회향하고자 하니 마음이 섭섭하고 착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단체가 내부의 불화나 재정난이 원인이 되어서가 아니라, 겨울을 맞는 나무처럼 때가 되어 활동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잘 아시다시피 전문적인 사회사업가가 아닙니다. 그냥 작은 회사를 운영하며 후원을 하다가,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이 일을 직접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회사와 작은손길을 번갈아 가며 두 번 출근하는 일이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평생 옷 한 벌과 발우를 들고 살아간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어려울 때마다 힘들지 않게 잘 지내온 것은 오직 묵묵히 후원을 해 주신 회원님들과 가까운 도반들과 가족들 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불경의 한 구절을 새기며 다소 긴 12월의 인사를 가름합니다.
사슴 같은 정강이에 여위었으나 강건하고,
적게 드시고, 탐욕이 없이,
숲 속에서 조용히 선정에 드시는 님, 고따마를 뵈러 가자.
온갖 욕망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사자처럼 코끼리처럼, 홀로 가는 그 님을 찾아가서
죽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물어보자.
진리를 가르치시고, 설하시는 분,
모든 현상의 피안에 도달하여 원한과 두려움을 뛰어넘은
깨달은 님, 고따마에게 물어보자.”
- 숫타니파타 <헤마바따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