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개인&풍경사진◎

쿠바여행기(2016.1.26-2016.2.3)

작성자고갱|작성시간16.02.04|조회수215 목록 댓글 7

출발하면서...

 

한국에서 26시간의 긴 비행을 해야만 겨우 도착하는 나라, 긴 비행의 고단함을 설램과 흥분으로 바꾸어 주는 나라, 콜럼부스가 “지상 최대의 아름다운 낙원”이라고 칭송한 나라, 바로쿠바다..쿠바를 다녀온 지금..쿠바의 아이콘을 얘기하라고 하면....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힘들다...가기 전에는 체게바라, 헤밍웨이 정도로만 알고 갔었는데...그것보다는 그들의 작은 식당마다 모두들 작은 오케스트라와 살사팀을 한팀씩 운영하고 있는 그야말로 음악과 춤이 생활이고 삶 자체인 곳이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인 곳..쿠바는 시간이 흐르는 듯하면서도 멈추어있고, 멈추어 있는 듯 하면서도 여유를 가진 나라이다.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공산국가로 고립된 이미지가 있지만 쿠바는 오히려 그들만의 당당한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열정과 느낌은 여행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편이상 간이카메라를 가지고 가는 바램에 사진의 질이 좋지 못한 점 이해부탁드립니다.

 

 





 

Capitolio 까삐똘리오: 옛 국회의사당

 

1926년 공사를 시작해 1929년 완공되었고 네오클래식과 아르누보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돔 양식과 유사하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팡테옹 사원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미국 국회의사당과도 유사하다. 1959년 쿠바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국회의사당 건물이었으며, 혁명이후 과학, 기술, 환경부 건물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쿠바 과학 아카데미로 사용되고 있다. 2013년부터 건물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다시 쿠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Real Fabrica de Tabacos Partagas 빠르따가스 시가공장

 

빠르따가스 시가공장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 브랜드공장 중 하나이다. 담배를 팔던 이주자 하이메 빠르따가스가 1845년 최초로 빠르따가스라는 공장을 설립했으며, 그의 아들이 계승하게 되어 은행에 팔리게 된다. 그러나 이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 정통 쿠바브랜드의 시가가 생산된다. 특히 쿠바혁명 이후 빠르따가스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최고의 판매율을 자랑하는 시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건물에 들어서자 훅하고 시가향이 코를 찌른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시던 할머니 방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 그자체였다. 시가는 너무 독하기 때문에 연기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안된다고 한다. 그냥 입에서 감미로운 시가향을 즐겨야 한다는데.. 시가를 즐겨 피웠던 체게바라의 우수에 젖은 눈빛과 얼마 안되는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쿠바인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쿠바역사의 산물인 시가를 체게바라는 이렇게 표현했다. “시가는 고독한 혁명의 길에 가장 훌륭한 동반자다.” 하지만 오늘 보여지는 시가는 노동의 현장에서 착취를 위한 시가처럼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애잔하다.`

 

  

 

Calle Obispo 오비스뽀 거리


아바나 구가지인 아바나 비에하는 도시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특히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스페인 식민지배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는 유럽풍의 전통 양식들을 볼 수 있다. 헤밍웨이의 단골술집 La Floridita를 시작으로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까지 거리가 오비스뽀 거리이다. 거리에는 옷가게,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 시장, 환전소, 여행안내소 등이 즐비해 있다.

 

쿠바에서의 첫날, 여행자들에게 낯섦을 활발함과 설렘으로 바꿀 수 있는 곳이 오비스뽀 거리이다. 장거리 비행으로 멍해진 마음를 한순간에 맑게 해줄곳이 오비스뽀 거리이다. 레스토랑마다 흥겨운 째즈음악과 춤을 보고 있노하면 정말 여기가 공산국가가 맞나?라는 생각이 의구심이 절로 생기게 된다. “아 여기가 정말 쿠바란 말인가” 나도 그들속에 묻혀 오비스뽀 거리를 활보해 본다.

 

















































한블럭만 벗어나면 아래와 같이 위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형형색색의 자동차들..

                   


                  


     


    


   


   


  


 


 


 


 



Plaza de Vieja 비에하 광장에 있는 그 유명한 맥주집 Factoria Plaza Vieja(팩토리아 쁠라자 비에하)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Cafe de Escorial(카페 데 에스또리알)

 

      

                       

    

                         


                        


                        

                             

Malecon 말레꼰 해변

 

말레꼰은 아바나 비에하, 센뜨로 아바나, 베다도 지역까지 뻗어 있으며, 그 거리는 8Km정도이다. “방파제”라는 의미의 말레꼰은 몰아치는 거센파도에게서 아바나를 따뜻하게 지켜준다. 이곳은 쿠바인들에게 시원한 카리브해의 바다향을 안겨주는 산책로이자 쉼터이다. 쿠바를 찾으면 한번은 꼭 걸어봐야 할 하바나의 아이콘이자 낭만의 거리이기도 하다. 쿠바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가난한 쿠바인들게는 낚시를 통해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하냔 물거품을 만들어낸다.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가슴속도 뻥하고 뚫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 배우 소지섭의 모광고 촬영장소고 잘 알려진 말레꼰. 도로위로 넘친 바닷물을 헤집고 달리는 올드카가 한층더 멋있어 보인다. 아바도 쿠바의 말레꼰이 더 낭만적인 것은 큰 굉음을 쏟아내며 달리는 올드카의 멋때문이기도 하리라.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50년전 과거로 돌아온 듯 하다.

 

 




















Callejon de Hamel 아멜거리: 예술혼 가득한 쿠바속의 아프리카

 

하바나에서도 아프리카 문화의 상징이 된 아멜거리. 벽화와 거리의 조형물은 1990년에 화가인 Salvador Gonzalez가 완성했다. 거리 전체에서 아프리카 분위기가 느껴진다. 강렬한 색채의 벽화와 조형물 그리고 아프리카 특유의 토속신을 모신 신당까지 어우려져 있다.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의 문화적 뿌리는 결국 아프리카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유일하게 표현의 자유가 허락된 곳.

 

거리에 들어서자 신나는 룸바 음악이 귀를 자극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쿠바 시가공장을 방문한 것처럼 매캐한 시가향이 코끝을 타고 전해온다. 하얀옷을 입은 쿠바인들이 연신 친절을 배푼다. 좁은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작지만 큰 쿠바의 뿌리를 찾아 온듯하다. 스페인 식민지시절 어쩔수 없는 흑인 노동력유입으로 자연스럽게 쿠바로 들어온 아프리카 문화가 그 뿌리를 포기하지 않고 쿠바의 중심 아바나에 조심스럽게 정착을 하고 있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Playa Santa Clara 산타클라라 해변

 

산타클라라 해변은 하바나 도심에서 25km정도 떨어져 있다. 설탕같은 하얀 모래와 따뜻한 코발트 빛의 푸른 바다로 유명한 명소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와 낭만적인 산타클라라해변은 여행자들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해질 무렵 석양빛을 따라 펼쳐진 붉은 백사장산책이 백미중의 백미이다. 저멀리 바닷가를 산책하는 연인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야자수그늘 아래 누워 본다. 따뜻한 햇살이 자장가 같아서 저절로 눈이 감긴다.

 

 

 








Buena Vista Social Club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쿠바음악에 심취한 기타리스트 Ry Cooder는 쿠바음악계의 거장들을 모아 “Buena Vista Social Club”이라는 밴드를 결성한다. 이들은 단 6일만에 녹음작업을 완료하고 1996년 앨범을 발매한다. 그리고 앨범 발매 2년이 지난후 Ry Cooder의 권유로 그의 절친한 친구 빔 벤데스 감독은 뮤직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바로 너무나도 유명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다. 오늘날 이단어는 무슨 단어보다도 가장 강렬한 쿠바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90살이 넘는 Compay Segundo(꼼빠이 세군도)의 곡 <Chan Chan>은 영화의 첫장면과 끝장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는 쿠바 음악계 거장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1998년 암스테르담의 공연과 뉴욕 카네기 홀의 공연까지 담았다. 미국에서만 8개월이 넘게 장기 상영되었고 세계의 30여개국에서 개봉되었다. 이영화가 상영된후 제2, 제3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 생겨서 쿠바음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Buena Vista Social Club>은 <환영받는 사교클럽>이라는 의미로 쿠바의 음악과 삶 그리고 감동 그자체로 볼 수 있다. Compay Segundo가 생존당시 멤버들과 함께 공연했던 Hotel Nacional de Cuba의 1930 살롱에서 그 공연의 흔적들을 찾아볼수 있다.

 

 부에나비스타 쇼셜클럽의 공연장인 살롱1930이 있는 Nacional호텔



부에나비스타쇼셜클럽공연장인 살롱1930 정문. 정문에 이미 고인이 된 꼼빠야세군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지금까지 살롱1930을 방문한 명사들. 한국의 반기문 사무총장의 얼굴도 보인다.






호텔내에 있는 부에나비스타쇼설클럽의 공연안내 표지판

 

La Zorra y el Cuervo 라 소라 이 엘 꾸에르보

 

위대한 재즈 피아니스트 추초발데스와 재즈기타리스 조지 벤슨이 공연했던 아바나 최고의 재즈클럽이 바로 La Zorra y el Cuervo이다. 색스폰, 드럼, 베이스, 피아노로 구성된 밴드공연이 주로 펼쳐지며 현재 아바나에서 라틴재즈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밤11:00-새벽3:00까지인 공연 모습

 

Sloppy Joe 슬로피 조 bar

 

하바나에는 1917년에 시작된 역사가 있는 술집이 있다. 이 바를 처음 열게 되는 조(Joe)란 인물은 1904년 아바나에 도착한 스페인 출신으로 본명은 Jose Abeal y Otero(호세 아베알 이 오테로)다. 그는 하바나에서 3년 동안 웨이트로 일하다가 미국 여행을 떠나 플로리다에서 거의 6년간 바에서 일했고, 1916년 다시 쿠바로 돌아와 카페에서 잠시 일을 했다. 그리고 1917년 자기 사업을 시작해 슬로피의 문을 열었다. 1917년부터 1919년 사이에 미국인 사업가들이 몰려들면서 그들을 위한 술집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술집은 낡은 창고를 개조해서 매우 더럽고 지저분했다. 그래서 조는 슬로피(Sloppy)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33년에는 미국의 키웨스트에서도 유사한 이름(Sloppy Joe)의 술집이 문을 열었는데, 헤밍웨이의 친구인 조 러셀(Joe Rusell)이 주인이었다. 아바나에서 모방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술집 벽면 기둥에는 유명 인사들의 사인이 들어 있는 사진이 빽빽히 걸려 있어서 고급스런 분위기와 함께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여배우 에바 가드너, 배우 겸 가수 프랑크 시네트라, 테드 윌리엄스, 린다 다니엘, 복서 조 루이스 등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Che Guevara 체게바라

 

쿠바에 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의 별이 박힌 검은 베레모를 쓰고 눈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남자. 바로 체게바라이다. 체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의과대학시절 오토바이로 남미여행을 떠나면서 민중들의 억압과 착취현장에 눈을 뜨게 되고 혁명가로서 의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멕시코에서 피델카스트로를 만나 하루만에 혁명군에 전격 가담한다. 이후 산타클라라에서 바띠스따정권을 타도하는데 혁혁한 공헌을 세우며 쿠바혁명의 분기점을 마련한다.

 

체는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전술을 이용해 저항하다 채포되어 1967년 처형된후 유골은 쿠바로 송환되었다. 그이후 볼리비아 전투에서 패배한 체게바라를 비롯한 39명의 유해중 17구는 볼리비아 한 공동묘지에서 대량 발견되어 1997년 산타클라라로 이장되었다. 녹색 지프로 체의 유골이 수송되었을 때 그를 환영하는 70만명의 쿠바 인파들이 하나같이 “Hasta siempre commandante(영원한 사령관동지)”를 외쳐되기도 했다.

 

체게바라는 중남미 아니 세계에서 혁명의 선봉장으로 가장 추앙받고 존경받게 되는데 혁명광장에 있는 체게바라의 모습에서 심장이 잠시 멈추어 버릴 정도로 강한 전율이 느껴진다. 체가바라가 죽은후 50여년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많은 여행객들이 그의 혼을 담아가가기 위해 쿠바를 방문한다. 오늘도 쿠바는 또다른 혁명을 꿈꾸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내무부성을 지키고 있는 미소가득한 체게바라의 얼굴은 이방인들의 승리를 마음껏 빌어주는 것 같다.

 

Plaza de la Revolucion(혁명광장)에 있는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글귀와 그의 얼굴을 형상화했다.

 

 




Cojimar 꼬히마르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곳

 

“전망좋은곳”이란 의미를 지닌 꼬히마르는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적막하지만 풍경이 아름다운 조그만 어촌 마을이다. 바로 헤밍웨이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안소니 퀸 주연의 1990년작 영화 <노인과 바다>의 첫장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소설속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모델이 되었던 Gregorio Fuentes가 살았던 마을이기도 하다. 결국 헤밍웨이는 이소설로 거의 문학인생의 마지막순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헤밍웨이는 꼬히마르에 와서 자주 낚시를 즐겼는데 푸엔테스는 훼밍웨이의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비록 2002년 104세의 나이로 푸엔테스는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여행객들은 소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꼬히마르를 찾고 있다. 방파제를 뒤로하고 마을로 들어가면 헤밍웨이가 살아 생전 자주 들었던 <노인과 바다>의 실제 배경이 된 La Terraza 레스토랑이 나온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여행객으로 고요한 마을에 활력을 더해주는 곳이다. La Terraza 레스토랑에서는 헤밍웨이가 앉았던 테이블을 그대로 세팅해 좋고 있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헤밍웨이지만 어쩐지 문을 열고 방금이라도 들어올 것만 같다.

 

 





<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인 푸엔테스 선장의 집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던 La Terraza 레스토랑


La Floridita 라 플로리디따: 헤밍웨이의 다이키리 칵테일

 

La Floridita는 중앙공원을 지나 오비스뽀 거리 시작점에 있다. 이bar는 신선한 과일과 럼으로 만든 특별한 칵테일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는 칵테일학교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칵테일 제조기술의 전통을 이러오고 있다. 헤밍웨이는 암모스 문도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여기에 들러 마셨던 다이끼리 칵테일에 반해 매일 해질녁이면 이바를 방문했다고 한다.

 

현재 1940-1950년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바텐더도 Regency Style과 일치하는 붉은 코트를 입고 있다. 다이끼리 칵테일은 쿠바와 불편한 관계였던 미국대통령 JFK가 즐겨 마셨던 술이기도 하다. 쿠바에서 탄생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다이끼리 칵테일이 모두 미국인(케네디와 헤밍웨이)덕분에 유명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헤밍웨이가 <만류 속의 섬들(Islands in the Stream)>에서 주인공이 비극적인 차 사고로 두 아들을 잃은 슬픔에 젖어드는 배경으로 이 술집을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쿠바는 찾는 모든 여행자들이 이곳에 모두 모여있는 것 같다. 입구부터 줄지어 있는 여행자들은 설렘반 기대반의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들이 주문한 다이끼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물어본다. “왜 당신은 다이끼리의 열렬팬이 되었소?” “왜 당신은 그렇게 쿠바를 사랑했소?”

    


 

Hotel Ambos Mundos

 

헤밍웨이가 1932년부터 1939년까지 7년동안 마물렀던 곳으로, 그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헤밍웨이는 이호텔에서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비롯한 수많은 단편소설들을 집필했다. 현재 이호텔은 호텔로서의 순수한 기능보다는 수많은 여행자들과 함께 헤밍웨이에 대한 향수를 드나느는 장소로서의 역할이 더 크다.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위해 호텔외부에는 각종 행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와 음악연주가 펼쳐진다. 잠시 넋을 잃고 그들의 예술에 취해 있노라면 “음악과 열정이 있는 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쿠바가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특히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511호의 방은 1인용 침대가 있고 생전에 사용했던 타자기, 낚싯대, 전화기 등과 사진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La Bodeguita del Medio 라 보데기따 델 메디오: 헤밍웨이가 함께한 모히또 칵테일

 

 

La Bodeguita del Medio는 쿠바의 전형적인 레스토랑 bar이다. 지금은 헤밍웨이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칠fp 전 대통령 살바도로 아옌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바블로 네루다 등 유명인들이 애용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벽면에는 그들의 서명과 일반인들의 낙서, 사진들이 가득하다. 또한 헤밍웨이가 직접 쓴 “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나의 모히또는 라 보데기따에서, 나의 다이끼리는 엘 플로리디따에서)”라는 문구가 있다.

 

골목을 들어서자 좌우로 거리예술가들의 데생이 넘치고 있다.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모자람이 없다. 저 멀리에서 흥겹고 빠른 박자의 음악이 들려온다. 벽면은 많은 여행객들의 낙서로 가득차 있어 그유명세를 가늠할 수 있다. 헤밍웨이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벼 어디 앉을 곳은 고사하고 발붙이고 서 있을자리도 없다. 왜 이리도 헤밍웨이에 열광한단 말인가? 이들은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일까? 흥에 겨워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여행자들을 보니 연주를 하는 악단들도 함께 흥이 난 듯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경원이 | 작성시간 16.02.05 길거리가 박물관 맞네요!
    덕분에 좋은구경 합니다! 잘 다녀오셨으니 더 반갑기도 하구요!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 작성자제이 | 작성시간 16.02.05 정말 아름답고 멋진 곳이네요 체게바라의 나라 살사의 나라
    조그마한 식당에도 살사팀이 있을만큼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곳
    꼭 가보고 싶어요 디테일한 여행기 잘 읽고 감상했어요 ~
    간접체험이라도 할 수 있어서 감사드릴게요 ㅋ
    진짜 멋지세요^^
  • 작성자샤샤 | 작성시간 16.02.06 문득 저두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ㅎ
    잘봤습니다~~^^
  • 작성자향미 | 작성시간 16.02.06 쉽게 떠날수없는 멋진 여행을 다녀오셨네요~~~
    고갱님덕분에 쿠바를 이렇게 알게되고 멋진 사진감강도 잘했습니다~~~^^
  • 작성자미나 | 작성시간 16.02.07 쿠바~ 살사를 한참 추던시절...
    살사의 본고장 쿠바를 많이 가고싶어했었는데..
    좋은곳에 다녀오셨네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