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중에- 이조가 골수를 얻었다는데,,,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가섭은 아난에게 전하였는데 달마는 누구에게 전하였는지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이조가 골수를 얻은 것은 어찌 됩니까?”
스님께서 “이조를 비방하지 마라”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달마가 또한 말하기를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안에 있는 자는 무엇을 얻었겠는가 말해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골수를 얻는 도리는 무엇입니까?”
“가죽이나 알아내도록 하여라. 여기 내게는 골수란 있지도 않다.”
“무엇이 골수입니까?”
“그렇다면 가죽도 만져 보지도 못했구나.”
---------------------------------------------------------------------------------
심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구절들이다. 저렇게 법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으니 만고에 빛나는 선지식으로
불릴 수 있겠다. 아마도 혜가가 골수를 얻고 이조가 된 것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달마는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물론 조주도 당연히 알고 있을테고,,. 그럼
고불이라는 칭호를 듣는 조주가 달마가 하지도 않은 말씀을 만들어 내며 거짓말을 한 것일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저렇게 말씀하시는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법의 실체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조주 스님에게는 당시 달마가 하신 하나 하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말씀이냐는 팩트체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조주는 지금 눈 앞에 성성히 서서 직접 법을 설하고 계신 것이다. 밖에 있는 자는 가죽을 얻고 안에 있는
자는 뼈를 얻었다면 지금 안에 있는 자는 어떤 법을 얻었겠느냐 하니, 질문 안에 말씀하시고자 한 뜻이 다 들어 있다.
밖에 있는자나 안에 있는자, 모두 담판한들이다. 치우침을 면할 수 없으니 깨우침과는 거리가 멀다.
조주 스님이 뒤에 물은 안에 있는 자는 진정으로 깨우친 자를 묻는 것이다. 상대적인 두 견해, 치우친 견해의 두 극단을
넘어서는 견해는 어떤 것이냐?. 어떤 자인가?...
법이 이러하고 심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인거 같아서 가져오고 적절히 해석도 곁들여 봤는데,
이제는 언어 문자가 무엇이고 법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