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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귀촌 앨범

20260606-순창 귀래정

작성자江佩 김대현|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석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당산’ 혹은 ‘벅수’라고도 한다.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거대한 사각의 자연석 한 면을 장승의 모습으로 다듬었다. 머리는 왼쪽으로 경사지도록 깎여 있고, 다른 장승과는 달리 눈이 작게 조각되어 있다. 세모난 콧날은 끝이 뭉툭하게 잘려 있는데, 이는 장승의 코가 아들을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에 따라 아들 낳기를 원하는 마을 아낙들이 떼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마와 양 볼에 혹이 불거져 나왔는데, 이마에 새겨진 혹은 불상의 눈썹사이에 있는 백호를 연상시킨다. 웃는 듯한 입 사이로 내민 혀의 모습이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

보통 석장승에는 남장승과 여장승을 나타내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충신리 장승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충신리 석장승은 애교스러운 생김새와는 달리 남장승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장승은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 민속신앙 중 한나라 할 수 있다. 순창군 충신리 대로변에 있던 석장승은 2004년 12월에 순창-남원간 도로변의 순창문화회관 1층에 순창 남계리 석장승(국가민속문화유산)과 함께 옮겨졌다.

 

1979년 중요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산 · 벅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 북쪽 허(虛)한 곳에 세워져 마을을 지키는 읍역수호신(邑域守護神) · 방액축사신(防厄逐邪神), 순창에서 남원으로 가는 옛 도로를 지키는 수문신(守門神) · 노신(路神)과 동제신(洞祭神)의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높이 175㎝, 둘레 200㎝이다. 이 장승은 정방형 자연석의 전면을 잘 다듬어 메주 같은 얼굴에 됫박이마, 긴 귀, 두툼한 봉눈, 깊게 패인 눈썹을 표시하고 양미간에 부처님 백호(白毫)를 표시하고 얼굴과 볼에 네개의 둥근 점을 볼록하게 조각하였으며, 입은 혀를 반쯤 내민 듯이 표시하였다.

얼굴과 목은 구분없이 몸체 중간에 세개의 주름(三道), 그리고 양손과 발바닥을 표현하였다. 가식이나 형식미를 배격하고 자연주의적 신성을 최대한 살린 민중신앙과 토속화되고 민중화된 불교미술이 한데 모여진 빼어난 신앙예술작품이다.

전면 얼굴부분을 제외한 3면은 거친 자연석을 천연 그대로 사용하여 괴체적(塊體的) 양감을 주고 있다. 순창에서는 풍수상 북방이 허해서 북풍을 막기 위한 비보림(裨補林)을 심고 당우(堂宇)를 지어 정초에 당제(堂祭)를 지냈다.

당제 후 마을 뒤의 장승에 삼색과일 · 포(脯) · 밥 · 술을 차리고 풍년과 악귀소멸을 비는 농악을 쳐서 동민들의 무병과 태평을 비는 장승제를 올렸다.

 

귀래정

조선 세조 2년(1456) 신숙주의 아우인 신말주가 지은 정자로, 지금 있는 건물은 1974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신말주는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귀래정 현장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단종 폐위에 크게 공을 세웠다고 되어있음.

안쪽에는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다.

후손들이 600년을 살아온 세거지이며, 남산사, 자혜당, 남애정사, 충서당, 유장각 등의 편액을 달은 건물들이 위풍당당하게 자라잡았다.

 

권일송

1933년 10월 19일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에서 출생했다. 광주공고와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수학했다. 대학 졸업 후 목포 영흥고등학교와 문태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영흥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불면(不眠)의 흉장(胸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강변 이야기」가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데뷔 이후 황명(黃命), 윤삼하(尹三夏), 강인섭(姜仁燮), 박봉우(朴鳳宇) 등과 『신춘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1982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과 1994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1966년에 첫 시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한빛사)를 발간한 후, 『도시의 화전민』(한빛사, 1969), 『바다의 여자』(국제출판사, 1982), 『바람과 눈물 사이』(홍익출판사, 1987), 『비비추의 사랑』(지성문화사, 1988) 등을 펴냈다.

그밖에 평론으로 「시정신과 산문정신」(1975), 「우리 시와 시대 상황」(1986) 등을 발표하였으며, 저서로 『한국 현대시의 이해』(국제출판사, 1981), 『윤동주 평전』(민예사. 1984) 등을 발간했다.

수필집으로 『한해지(旱害地)에서 온 편지』(현대문학사, 1973), 『생, 왜 사랑이어야 하는가』(을지출판사, 1981), 『우리들의 시대를 위하여』(친우, 1985), 『슬픔을 가르칩니다』(보성출판사, 1990) 등을 간행했다.

1995년 11월 22일 간경화로 타계했다.

 

순창 향교의 대성전

1975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순창 객사(옥천지관)

1974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래는 정당(正堂) · 동대청(東大廳) · 서대청(西大廳) · 중문(中門) · 외문(外門) · 낭무(廊廡)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殿下萬歲(전하만세)’라고 쓴 궐패(闕牌 : 闕자를 새긴, 위패모양의 나무패)를 안치하고 있다.

동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인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객사의 초창(初創) 연대는 불확실하며, 현재의 건물은 1759년(영조 35)에 중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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