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오수 의견비
주인을 위해 죽은 오수개의 충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높이는 218cm, 가로 96cm, 두께 28cm이며, 제작 시기는 알 수 없다. 1928년경 전라선 개설 공사를 하던 중 오수면 상리마을 앞 하천에서 발견되었으며, 1940년에 원동산공원으로 옮겨졌다.
비의 앞면에는 하늘을 보고 누운 개의 형상과 개의 발자국 모양이 있어, 마치 주인을 구하고 의롭게 죽은 개가 발자국을 남기고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비의 뒷면에는 시주자 명단 80여 명이 새겨져 있다. 해서로 쓰인 비문의 서체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육조체로서 호방하고 웅건한 풍격이 드러난다.
고려시대 최자가 지은 『보한집』(1254)에 실린 오수의견(獒樹義犬) 이야기에 따르면 오수(獒樹)라는 지명은 주인을 위해 죽은 충직한 개의 무덤에서 자란 나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괴정
조선 명종 즉위년(1545)에 오양손(吳梁孫)이 처음 짓고 1922년 후손들이 고친 것이다.
해주오씨로는 처음으로 삼은리에 들어 온 오양손은, 김굉필(1454∼1504)의 문인으로 참봉을 지냈다. 그는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 등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는 모습을 보고, 경기도 수원과 남원 목기촌으로 은거하였다가, 중종 16년(1521)에 삼은리로 들어왔다. 이후 그는 이곳에 오괴정을 짓고 시와 술을 벗삼으며, 후학을 지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누정에는 사제당 안처순의 글과 정자 건축에 대한 기록 등을 담은 8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1856년에 중창하였고, 그 뒤 1922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괴정이란 이름은 정자주변에 5그루의 괴목을 심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괴정(槐鼎)은 전통적으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삼공의 지위를 이르는 말이다. 오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추녀의 네 귀퉁이 활주 석대 위에 활주를 올려 추녀를 받치고 있다. 가운데 좌우 1칸짜리 방을 두었고 좌우로 툇마루를 두었다.
뇌천마을 뇌호정
만취정
경주김씨 김위(金偉, 1532∼1595)가 1572년(선조 5) 경에 세운 정자이다. 목조와가로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고, 왼쪽 2칸은 방을 두었고, 오른쪽 1칸에는 마루를 두었으며 앞뒤로 툇마루를 두었다.
김위는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 김균(金稛)의 7대손으로 1532년에 출생하여 1558년(명종 13) 문과에 급제하였고 예조정랑에 오른 후 1562년(명종 17) 합천군수 등 아홉 고을의 수령을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1580년(선조 13)에 명나라 사신 서계신(徐繼申)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영위사(迎慰使)로서 사신을 맞이하였고, 이때 만취정의 서액을 받아 현판을 걸었다.
김위는 만취(晩翠)를 호로 삼았는데, 만취란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초목(草木)의 푸른빛을 뜻한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 백호(白湖) 임제(林弟) 등과 더불어 시문을 주고 받았던 헌시판(獻詩板)이 걸렸다.
임실 삼계면에 '박사마을 기념비'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전북 임실군 삼계면 주민들이 후손들에게 본보기를 삼도록 하기 위해 박사고장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는 “고장의 명예를 빛낸 사람들의 뜻을 이어받아 애향심을 갖고 더욱 정진하자”는 취지문이 새겨졌다.
삼계면은 인구가 2600여명에 불과한 산골이지만 전 고려대 교수 허세욱씨(65·중문학)를 비롯해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55), 고려대 한민홍교수(58·산업공학) 등 모두 86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노상순(77)전 전북대 공대학장 가족은 4부자가 박사이고 과학기술원 김장주교수(공학)와 이화여대 이공주교수(제약학) 등 3쌍은 부부가 박사다.
광제정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광제정 양돈(1461∼1512)의 호로 미루어 그가 생존시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양돈은 성종 9년(1498)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무오사화로 봉현리에 낙향하였다. 그의 문장과 덕행은 뛰어나 당시 모범이 되었고, 남효온의 추천으로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고 조용히 세상을 살았다.
계단식 축대 위에 정자가 있으며, 한 가운데에 계단식 통로가 있다. 정자 안쪽에는 ‘매당(梅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하서 김인후의 글과 기정진의 ‘광제정중건기(光霽亭重建記)’ 등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