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금과 삼외정
- 금과면 소재지 모정리에는 삼외당이 있다. 삼외당은 높다란 암반 언덕위에 있는데 이 암반은 화강암이다. 삼외당 정자 바로 동편으로는 판상으로 벌어져 있는 화강암 이 곡면을 이루며 둥글에 떠있는 구조를 하고 있는데 놀랍 게도 주변에 교목으로 자라고 있는 상수리 나무의 뿌리들에 의해서 들려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참나무류에 속하는 거대한 상수리 나무들이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마치 용의 몸통에서 꼬리로 이어져가며 바위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신비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돌보다 나무가 더 강함을 보여주고 있다.
- 1914년 이름을 외모·중모· 신모 등으로 바꾸었고, 이를 합하여 모정리라고 개칭하였다. 2008년에 다시 매우리梅宇里로 바꾸었는데 이곳에 금과면의 면 소재지가 있다. 광산 김씨, 설씨와 홍씨가 각각 대종을 이뤄 마을을 형성하였다. 특히 남양 홍씨洪氏가 약 80호의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는데, 소위장군 홍윤희가 16세기 초에 전라남도 강진에서 그의 처가인 순창 설薛씨를 따라 이 마을로 들어온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 삼외당은 이곳 매우리 출신의 선비 홍함(洪函,1543~1593)이 지은 정자이다. 홍함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에 출전하기 전에 정자를 지어 자신의 호를 붙여 삼외당이라 이름 붙이고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 1587), 충강공忠剛公 김제민(金齊閔, 1527-1599), 충장공忠壯 公 양대박(1544-1592) 등 당대 명사들과 교류하며 시문을 즐겼던 곳이다. 홍함이 교류했던 임제는 당대 명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던 조선중기 시인 겸 문신으로젊은 나이인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주에 그의 정자가 기념관이 있다.
1511년(중종 6) 무렵에 나재 채수(蔡壽, 1449~1515)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번역 소설본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2020년 12월에 채수의 원작을 다시 써낸 『다시 쓰는 설공찬이』에서 “1504년(연산군 10년) 늦가을 전라도 순창 마암(현재 순창군 매우리)마을에는 설공찬의 아버지 설충란이 대대로 내려오는 종갓집에 살고 있었다.” 라고 시작하는 부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