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트비시 요새
이 요새는 10 ~ 14세기에 걸쳐 건설된 것으로 설명되며,
므트크바리 강과 파라바니 강의 합류점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좁은 협곡의 높은 바위언덕에 성체와 성벽으로 이루어져있고
중세 조지아의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 구조를 볼수있다
성벽 안에 성이 쌓인 형태로 제일 오래된 부분 검은색이 기원전 2세기 세워진 것이라 하니 대단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전투등 잔혹한 전투와 파괴.재건을 겪었지만 위풍당당하게 주변을 지배하고 있다
바르지아-해르트브시 문화경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있다
마슈르카(이곳의 대중교통)를 타고 동굴도시로 이동한다.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의 남쪽, 므트카바리(Mtkvari) 강이 흐르는 협곡의 가파른 절벽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신앙의 흔적이 있다.
그것은 이슬람 제국들의 끊임없는 침략과 칼날 속에서 기독교 신앙과 민족의 고귀한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성도와 수도사들이 괭이와 정으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파고 들어가 완성한 눈물의 도성이다.
바르지아의 역사는 이 땅의 안락함을 기꺼이 포기하고 오직 영원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바위 구멍을 유일한 장막 삼아 살았던 이들의 피와 땀으로 기록된 거룩한 연대기이다.
타마르여왕 때 에루세티산에 만들어진 바르지아 동굴도시는
1283년 삼즈헤자바헤티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동굴의 2/3이상이 파괴 되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게오르기 3세의 뒤를 이어 조지아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군주이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타마르 여왕이 즉위하면서,
바르지아는 국경의 요새를 넘어 왕국의 영적, 군사적 중심지로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바르지아라는 이름이 태어난 유래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의 타마르가 아버지 게오르기 3세의 손을 잡고 건설 중인 동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동굴 내부를 탐험하다가 그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아버지를 비롯한 군사들이 당황하여 어두운 동굴 구멍마다 공주의 이름을 외치며 소리 높여 부를 때,
타마르는 동굴 깊은 곳에서 환하게 웃으며 "아크 바르, 지아!(Ak var, dzia!)"라고 외쳤습니다.
조지아어로 '지아'는 삼촌 혹은 아저씨를 뜻하는 친근한 표현이며,
"삼촌, 저 여기 있어요!"라는 외침은 동굴 벽을 타고 메아리쳐 울렸다.
왕국은 이 사랑스러운 사건을 기념하여, 동굴 도성의 이름을 바르지아라 명명하였다고 조지아 연대기는 전한다
[출처] 바르지아, 세계 최대의 거룩한 동굴도시|작성자 /내가 신혼때 다녔던 태인교회 목사님 섬 목사